이해받지 못한 마음
Imperfectly Perfect, 나의 빛과 그림자
제가 어렸을 적 그토록 외로움, 억울함, 반발심, 죄책감을 가진채 심리적 빈털터리로 살았던 이유는 부모님이 모든 심리적 자원을 빼앗아갔기 때문입니다. 아이를 아래에 두고 복종을 받으면서 사랑받는다는 느낌과 대접받는다는 느낌을 챙기는 부모님의 태도, 자신의 잘못된 점은 절대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자식의 잘못된 점만 콕 집어 비난하면서 자신의 인정욕구를 채우는 태도, 자신의 두려운 감정을 폭발적으로 내지르면서 자식의 서운한 감정은 조금도 수용하지 않는 부모님의 태도, 자식을 이해해주지 않으면서 자식은 부모를 이해해야 한다는 태도, 자신의 문제해결능력이 없음을 자식이 미숙한 탓으로 무마시키는 무책임한 태도, 자식에게 본인이 원하는 칭찬만 들으려고 하는 부모님의 태도 등. 저는 어렸을 적부터 부모님을 심리적으로 배려해야 하고 돌봐야 했습니다. 부모님께서 원하는 사랑과 인정을 끝없이 드려야 했죠. 어쩌면 부모님은 어렸을 적 받지 못한 무조건적인 사랑을 자식에게 바랬는지 모릅니다. 저는 부모님의 결핍을 끝없이 채워주는 삶을 살아야만 했습니다.
대학생이 되자 제 마음에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더군요. 부모님께 드릴 심리적 여유와 자산은 점점 바닥나고, 부담스럽고 버거웠습니다. 그리고 제 속마음은 부모님께 이렇게 외쳤습니다. “당신도 잘못했으면서 저에게 이렇게까지 비난할 자격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당신이 저에게 지적할 만큼 떳떳하고 완벽한 존재인가요?” “당신이 나의 부족한 점을 이해하지 않은 만큼 나도 당신의 부족한 점을 이해하기 싫습니다.”, "제가 가장 힘들고 연약했던 순간에 당신들에게 비난받고 방치를 당했기에 제 마음을 주고 싶지 않아요." 그렇게 제 마음은 애정결핍 그리고 열등감으로 가득차게 되었습니다.
지금부터 애정결핍과 열등감이 주는 모든 부작용을 낱낱이 나열해 보겠습니다.
사랑받지 못하고 이해받지 못한 결핍된 마음 즉, 무시당하고 뺏긴 마음은 열등감이 됩니다. 상대방의 마음을 절대로 알아주기 싫은 각박하고 야박한 무시하고 싶은 마음이 되죠. 상대방 마음과 의도 그리고 부탁을 절대로 알아주고 싶지도 않고, 수용하고 싶지도 않고, 노력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제 심리적 자원을 뺏기지 않는데 모든 초점이 맞춰져 있다 보니 다가오는 사람들을 볼 때 '나를 힘들게 할지, 안 할지' 재고 따지고 의심하게 됩니다. 인간관계는 협소해지고 사회성과 공감능력은 떨어지게 되죠.
한편, 마음의 열등감을 우월감으로 치환하려는 잔인한 노력이 시작되죠. 부모님께서 저를 대했던 것처럼요. 상대방의 잘잘못을 따져서라도 이해해주고 싶지 않은 심리가 발동합니다. 상대방의 자격을 논하면서 ‘이런 것도 못해? 이해할 수 없어.’라는 생각을 수시로 하게 됩니다. 제가 이해받아본 적이 없기에 남도 이해하는 방법을 모릅니다. 자비 없는 가차 없는 태도로 이어지고, 상대적인 인정과 사랑을 모두 챙기기 위해 갖은 수를 동원하여 남의 단점을 꼬집어 깎아내립니다.
반면, 나는 옳은 사람, 자격을 갖춘 사람이 되어 사랑받고 인정을 받으려는 헛된 노력을 반복합니다. (이런 헛된 노력을 반복했던 시기에는 남에게 인정을 받으려고 기를 쓰고 집착하는 미성숙한 사람이 더 멋있어 보이더군요.) 그러다가 누군가가 무조건적인 사랑과 인정을 받는 모습을 보면 울화통이 터지고 세상 탓을 하게 됩니다. 내가 완벽하게 모든 자격과 조건을 갖추었다고 생각했는데 사랑과 인정을 받지 못한 현실을 마주하고 절망을 합니다. 열등감에 기반한 비좁은 시야로 세상을 쉽게 판단하고 혐오하게 됩니다. 나아가 부모님께 심리적 착취를 당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인간관계에서 착취를 하고 착취를 당하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으로 굳어집니다. 주변에 비슷한 사람들이 몰리겠죠. 서로를 이용하고 이용당하는 관계만 형성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선을 서로 지키지 않고, 강요하고, 무시하고, 집착합니다. 부모님의 부탁을 거절해 본 적이 없기에 사회에서도 상대방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합니다. 착한 척하다가 언제나 손해만 보기도 하고, 아주 운이 없을 경우 저의 우유부단한 측면을 이용당해서 약점과 호구를 잡히는 일도 빈번합니다. 일명 가스라이팅을 당한다고 하죠. 인간관계에서 필연적으로 오해가 많이 생기지만 오해를 푸는 대화를 해 본적이 거의 없기에 마음의 문을 닫고 인간관계를 끝내죠.
그럴수록 인간에 대한 불신이 커져서 무시당할까 봐 두려움, 미움받을까 봐 두려운 마음에서 벗어나기 위해 온갖 방어태세를 갖추며 자의식이라는 갑옷으로 중무장을 합니다. 자의식이라는 갑옷은 누군가는 외모, 학력, 돈, 이미지, 재능, 피지컬, 꿈, 가족, 연인, 친구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납니다. 그 갑옷을 무기 삼아 사랑과 인정을 받는데 집착하죠. 예를 들어, 외모라는 요소 하나로 모든 사람들을 판단하며, 등급을 나누고, 등급 이상인 사람은 우월한 사람, 등급 이하인 사람은 열등한 사람으로 취급하며, 자신 또한 등급 이상인 사람이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합니다. 스트레스와 강박증은 덤이겠죠. 애초에 사랑과 인정을 받기 위해 벌인 행동이지만, 그 행동은 미움과 비호감 덩어리가 되어 버려 말투와 표정으로 매 순간 타인을 평가합니다. 심지어 일정한 자격이 없는 사람은 사랑과 인정을 받을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한다며 세상의 기준을 쉽게 재단하고 깔보고 혐오하는데 중독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줍니다.
인간관계란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알아가는 것에 진정한 묘미가 있는데, 모든 인간관계의 즐거움과 가능성을 스스로 차단해 버리는 꼴이 됩니다. 뺏기고 무시당할까 봐 두려우니까요. 심지어 사람의 등급을 나누고 차별하면서, 제가 열등하다고 평가했던 사람이 주는 진실한 사랑과 인정을 느끼지도 못하고 내다 버리게 됩니다. 그토록 원했던 사랑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외면해 버리는 꼴이 되는 거죠. 그리고 제가 우월하다고 평가했던 사람이 주는 사랑과 인정을 받고 좋아하다가 이내 그 사람의 단점을 보고 실망해 버립니다. '우월한 사람에게 열등한 면이 있다니!' 하면서요. 배신을 당한 적 없지만 묘한 배신감을 느끼는 일도 빈번합니다.
인간이란 본디 빛과 그림자를 함께 가지고 있고, 이타적이면서 이기적이고, 시간과 상황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진화하고 변질되는 입체적인 존재이며, 배울 점과 배우지 말아야 할 점이 동시에 존재하고, 그렇기에 신뢰함과 동시에 합리적인 의심도 필요하며, 그래서 인간관계는 나와 상대방을 알아가고 서로의 주파수를 맞춰가는 즐겁고 오묘한 화학작용입니다. 그 과정에서 서로를 깊게 알아보고 인정과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모든 인간관계를 완벽주의적 시각으로 바라보면서 제대로 된 소통을 시작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 부모님으로부터 온갖 비난과 상처를 받으면서 수치심, 굴욕감, 반발심, 외로움을 주로 느꼈습니다. 가족들끼리 애정과 인정을 주고받는 연습을 하지 못했죠. 꽤 긴 시간 동안 사랑보다 미움을 받았고, 인정보다 질책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대학생 이후 남들에게 사랑과 인정에 집착하는 시간으로 거의 모든 인생을 보냈습니다. 이성교제와 직장생활도 순탄치 않더군요.
모든 관계를 거쳐 저는 끝내 홀로 남겨졌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제 마음을 들여다보기 시작했습니다. 제 무지함을 인정하고 극복하기 위해 겸손한 자세로 저를 세밀하게 알아갔고, 매 순간 두려움을 받아들이고, 어린 시절 비난만 받으면서 불건강한 생각들로 하루하루를 보냈던 어린 시절에 대한 애도와 함께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연습을 했습니다. 그 긴 과정은 힘겨웠지만 열매는 아주 달콤했습니다. '사랑'을 알게 되었죠.
사랑이란, 상처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면서 앞으로 차분히 나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먼저' 사랑과 이해를 줄 수 있는 상태에서, 상대방을 존중하고, 마음을 주고받을 때 사랑의 충족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덧붙여, 내 마음의 대부분을 채울 수 있는 존재는 ‘남’이 아닌 ‘나’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타인을 통해 마음이 충만해지는 느낌을 받는 건 고작 20%밖에 안 되더군요.
돌아보니 제가 지금까지 사랑과 인정에 목말라 있었던 것은 제가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해서였습니다. 제가 저에게 마음을 주지 못했고, 소통하는데 서툴렀습니다. 부모님께 배우지 못한 가장 큰 결함이 바로 마음 씀씀이 습관과 그에 따른 소통습관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리하여 제 결핍과 상처의 가장 큰 피해자이자 가해자는 저였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희 부모님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해서 자신에게 가해와 피해를 동시에 저지르고 있었다는 생각을 하니 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저는 한때 조건적인 사랑을 하고 언제나 저에게 상처만 주는 부모님을 원망했던 적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부모님의 조건적인 사랑을 통해 인간의 불완전성을 이해했고, 본질적인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과거의 제 모든 상처와 결핍은 '사랑'이라는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고, 모든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완벽한 사랑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조건적인 사랑이야말로 가장 완벽하게 아름다운 사랑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제 과거가 참 비참하고 쓸모 없다고 생각했는데 제 상처는 진정한 사랑을 알기 위한 전주곡이었습니다. 그리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바랐던 집착을 버릴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