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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주양 Jun 25. 2023

[17화] 이해받지 못한 마음

이해받지 못한 마음

또 한 번 너의 세상에 별이 지고 있나 봐
숨죽여 삼킨 눈물이 여기 흐르는 듯해
<아이유, Love poem 가사 中>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공간에 나 홀로 외치는 메아리. 그 막막함과 외로움. 이해받고 싶어서 내 연약한 마음을 어루만져 달라고 드러낸 순간, 부모님은 저를 질책했고 형제와 친구들은 저를 외면했습니다. 그 뒤에 따라오는 경멸의 눈빛과 무시하는 말들. 그들에게 눈물로 호소해 봤지만 결국 저는 내팽개쳐졌고, 짙은 서러움과 잔인한 수치심이 느껴졌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내가 사랑받고 존재할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인지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랑받고 싶어 하는 저의 마음에는 깊은 상처가 났고, 그 상처는 취약점이 되어 남들 앞에서 절대로 드러내서는 안 될 그 무엇이 되어버렸습니다. 내 마음을 부끄러워하고 외면한 만큼 제 어깨와 등은 굽어졌고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니 표정과 눈빛은 냉랭해졌습니다. 감성적이고 섬세한 제가 불편하고 싫었습니다. 이때부터 저는 제 존재 자체에 대한 열등감이 생겼습니다. 그 후로 눈물겨운 노력이 시작됩니다. 제가 사랑받을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수치스러운 감정은 철저히 숨기고, 우월하게 드러낼 것들을 혼심을 다해 메꾸기 시작했습니다. 성적, 자격증, 직장, 외모 등으로요. 남에게 기대면 상처받을게 뻔하기에 제가 빨리 독립적으로 혼자 설 수 있는 능력 있는 사람이 되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 무엇으로도 제 비참한 마음은 메워지지 않았습니다.


그럴수록 이해받지 못해서 아프고 비참하고 서러운 마음을 더 숨기기 위해 노력을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 속에 있으면 자꾸만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요동치더군요. 순간 마음속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나대지 마"였습니다. 그 순간 제가 부끄러워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군중 속의 소외감보다 홀로 지내는 안전한 외로움을 택했고, 저를 무심하고 시크한 이미지로 포장을 해서 제 취약점을 철저히 방어하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저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에게 황급히 선입견을 덧씌워서 더 이상 다가가지 않으려는 노력을 한 적도 여러 번입니다. 한편으로 그런 저를 독립적이라며 자랑스러워하기도 하고 반대로 지질하다며 조롱하기도 했습니다.


제 마음을 외면한 만큼 다른 사람의 마음도 외면하게 되더군요. 다른 사람의 사랑받고 싶어 하는 마음을 보는 순간 당혹스럽고 싫었습니다. 그래서 무시하고 싶어 졌습니다. 심지어 그들의 사랑받고 싶어 하는 마음이 얄밉고 유치해 보이더군요. 상대방의 마음을 항상 튕겨내면서 속으로 이렇게 외쳤죠. "하아... 어쩌라고" 너무 귀찮고 피곤한 나머지 사람들의 요청을 모조리 거부하고 의중을 해석하지 않았습니다.


저에게 누군가의 부탁은 저를 침해하고 귀찮게 만드는 참견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받아줄 생각이 없었거든요. 단지, 제 입장이 곤란해질까 봐 의무감으로 부탁을 들어줄 뿐이었습니다. 그 후에 밀려오는 뺏기고 손해 봤다는 생각은 저를 무척이나 괴롭게 만들더군요. 그래서 저는 부탁을 안 받으려고 인간관계를 피했고, 억지로 부탁을 들어준 후 그 사람을 미워한 적도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미워하는 제 자신을 열등하다며 또 미워하곤 했습니다.


한편 어렸을 적 부모님과 친구들의 거절이 제 안에 상처로 남아서 남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겠더군요. 제 마음이 아파본 경험이 있기에 남에게 잔인한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남의 부탁을 모두 들어줘야 한다는 강박이 생겼고, 내가 원하는 사람의 부탁만 100% 들어주기 위해서 인간관계를 협소하게 만든 적도 있습니다. 거꾸로 제가 남에게 부탁을 많이 하지도 않지만, 그 몇 안 되는 부탁을 거절이라도 당하면 실망을 넘어 절망하고 분노를 넘어 광분하게 되더군요. 사람들의 마음을 선택적으로 외면하고 싶은데 외면하기 힘든 이 현실, 사람들이 나를 100% 수용해 주길 바라지만, 나는 사람들을 100% 수용해 주기 힘든 이 모순적인 고통.


이것은 모든 상황이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고 통제되어 주길 바라는 욕심과 이기심의 발로였습니다. 이때 독선과 아집 그리고 이기심이 극에 달해서 '내 욕구는 정당하지만, 네 욕구는 불합리해'라며 저에게 상처를 주면서까지 인정을 받아내려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더군요. 고등학교 때 가장 친했던 친구 2명이 모두 이런 태도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저와 자신을 수시로 비교하고 경쟁하고 무시하면서 끝없는 불안과 열등감/우월감의 굴레를 맴돌았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자존감에는 이미 구멍이 나있고 기준에 따라 상대적인 위치는 수시로 바뀌기에 제 것을 끝도 없이 뺏고 상처를 줄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그래야만 내면의 안정감을 유지할 수 있었겠죠. 무엇보다 자기 불신의 구멍을 메울 수 있는 사람은 제가 아니라 본인이라는 사실을 몰랐을 겁니다.


그때 제가 친구들에게 “그래~ 네가 나보다 낫네 ^^” 하면서 인정을 줬더라면 참 좋았을 텐데 저는 욕심 많은 그들이 유치하다고 생각해서 인정을 안 해주려고 있는 힘껏 버텼습니다. 저도 그들과 똑같이 유치한 이기심과 아집을 발휘한 것이죠. 끝끝내 저는 그들에게 인정을 안 주려고 있는 힘껏 버티다가 비웃음과 왕따를 당하며 더 참혹한 수모를 겪어야만 했습니다. 고통스러웠습니다. 이렇게 제가 절대로 이해해 주기 싫은 이기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자신만 이해받기를 원하는 똑같은 이기적인 사람을 만나게 되어 있습니다.


제 처절한 고통의 정체는 제 안에 잠복해 있던 자기불신에 기반한 열등감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은 자존의 불안을 남의 것을 뺏고 뺏기고 무시하고 깔보고 비웃으면서 나의 상대적인 위치를 확인하려 했고, 위치성을 통해 자존의 안정감을 얻으려 한 겁니다. 우리 모두가 상대방에게 인정을 주면 내 존재가치가 낮아지고 남의 존재가치가 상대적으로 올라간다고 믿었고, 상대방에게 인정을 뺏기면 내 존재가치가 낮아지고 남의 존재가치가 상대적으로 올라간다고 믿은 거죠. 그래서 상대방에게 인정을 뺏고 뺏기면서 서로를 미워하고 분노했습니다. 그 분노와 미움은 남이 아닌 '존재가치가 보잘것없는 자신'을 향해 있었습니다.


하지만 분노는 언제나 제가 되찾아야 할 것들을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그것은 바로 자기 확신의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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