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사람.
내 짝꿍은 철인이다.
몸이나 힘이 무쇠처럼 강한, 그래서 강력한 체력과 정신력을 지니고 있다는 은유적 표현이 아니라 말 그대로 철인 3종을 하는 철인, 아이언맨이다.
트라이애슬론, 철인 3종은 수영, 사이클, 마라톤을 연달아 시행하는 복합 경기로 보통 철인 3종 경기라고 하는데, 철인의 최종 목적 코스는 킹코스로 수영 3.8Km, 사이클 180km, 달리기 42Km를 17시간 안에 들어와야 성공하는 경기이다.
한 가지도 쉽지 않은데, 3가지 종목을 모두 끝단까지 해내야 하는 이 무자비한(?) 경기는 단순히 힘과 체력만 좋아서 할 수 있는 경기는 아닌 듯하다.
완주까지 강력한 집중력을 유지하면서도 강인한 정신력과 극강의 인내심이 필요하며 무엇보다 경기를 위한 준비와 연습에서 열정과 성실함을 지녀야 한다.
짝꿍은 그런 킹코스를 완주한 진정한 철인이다. 가끔 옆에서 보고 있으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대게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진화하는 코스가 그렇듯 짝꿍은 마라톤을 하다 철인이 되었다.
사실 마라톤은 나와 함께 시작했다.
첫 마라톤은 10km였는데, 일종의 이벤트로 함께 출전했다. 생각보다 괜찮았다. 특히나 비록 10km였지만 10분도 뛰지 못했던 시절이라 성취감이 꽤 컸다. 자신감이 붙었고 이후 하프코스를 신청했다.
연습과정에서 나름 고충이 있었지만, 결국 우리는 하프코스를 완주했다. 하프코스 완주는 인생에 있어 꽤나 큰 의미를 주었다. 그 시절 나에게 인간이란 마라톤 하프코스를 완주한 자와 그렇지 못한 자로 나뉘었다.
그러다 나는 뛰기를 멈췄고 짝꿍은 멈추지 않았다.
멈추지 않은 자는 계속 성장했고 그해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면서 어나더레벨이 되었다.
풀코스를 분기별로 뛰기 시작하더니 기어이 철인3종으로 넘어갔다.
철인3종를 하는 사람은 운동과 훈련이 일상으로 세팅되어 있다.
그래서 짝꿍은 매달 목표량을 설정하고 훈련을 한다. 오늘 짝꿍은 지난달 목표량을 모두 채우고 몸풀이(?) 달리기를 한다며 밖으로 나갔다. 그러면서 지나가는 말로 물었다.
"오늘은 그냥 슬슬 얼마 안 뛸 건데, 같이 뛸래?"
순간 나는 달리기를 끊은 지(?) 몇 년이 되었고 운동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5분 이상을 계속 달리는 것은 불가능하고 생각했다. 짝꿍과의 체력과 실력의 격차가 큰 만큼 생고생이 예상되기도 해서 머뭇거렸다.
그러나 머뭇거렸다는 것은 사실 어느 정도 마음이 있다는 것이다. 애초에 전혀 생각이 없으면 우리는 매우 단호해지기 때문이다.
비가 온 뒤, 가을 하늘은 청명했고 바람은 차가웠으나 햇살이 좋았다.
딱 이런 날씨에 온몸으로 바람을 맞으며 달렸던 몸의 기억이 소환되었다.
그렇게 짝꿍과 참 오랜만에 함께 달리기를 시작했다.
달리기 전 짝꿍이 말했다.
"당신 페이스 메이커를 해 줄 테니까 그냥 천천히 호흡하면서 달려. 기본 7분대로 달려보자."
아파트를 크게 돌며 그렇게 짝꿍과 함께 나란히 달렸다.
다정한 나의 코치는 달릴 때 손의 모양은 달걀을 가볍게 쥐듯이 하기, 팔의 움직임은 와이자를 유지하기, 뛸 때의 느낌은 바닥을 가볍게 딛고 통통 뛰는 듯하기, 가슴과 허리는 펴서 세우기, 호흡은 입으로 쉬되, 공기가 몸 안으로 충분히 들어오는 것을 느끼기, 가끔 하늘을 바라보기 등을 말해주었다.
나는 짝꿍의 코칭이 있을 때마다 자세를 고치고 호흡을 하고 시선에 변화를 주었다.
옆에서 달리다 조금 지치면 짝꿍의 뒤에서 그를 따라 달렸다. 그의 등을 보며 따라가는 길이 안심이 되었다.
그렇게 5분도 못 뛸 것 같던 내가 결국 한 번도 쉬지 않고 30분을 넘게 달렸다.
참 오랜만이었다. 달리면서 느끼는 상쾌함과 두근거림, 그리고 이 꽉 찬 자유로움이.
혼자서는 단 5분도 뛰지 못했지만 함께 달리니 실제 30분보다 더 달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페이스 메이커의 중요성이 다시 한번 크게 다가왔다.
신뢰할 수 있는 페이스 메이커가 있다는 것은 러너들에게는 엄청난 축복이다.
마찬가지로 신뢰할 수 있는 삶의 동반자가 있다는 것은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크나큰 축복이다.
존재로써 온전히 함께 하며 기쁨도 슬픔과 고난과 역경도 함께 경험해 주는 인생의 페이스 메이커는
우리가 할 수 없다고 느낄 때 우리의 잠재력을 이끌어 내주며 힘들어 포기하고 싶을 때 함께 견뎌준다.
그리곤 우리를 끝까지 완주할 수 있게 해 준다.
인생에 나만의 멋진 페이스 메이커가 있음에 감사하며 나 또한 짝꿍의 그리고 또 누군가의 멋진 페이스 메이커가 될 수 있다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모두에게 자신만의 페이스 메이커가 지금 함께 하고 있기를 마음으로 기원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