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쓱쓱 Sep 07. 2024

내 것과 네 것 구분하기

관계에서의 꿀팁

 "뭔진 잘 모르겠지만, 저는 저분이 그냥 계속 걸려요. 무엇 때문이지는 잘 모르겠는데, 좀 불편하고 그냥 좀 그래요."

 그녀는 정확히 나를 쳐다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를 보며 말하는 그녀의 얼굴과 입술이 거리가 있었음에도 살짝 떨리는 게 보였다. 

 

 처음 만난 사람들의 모임에서 이제 막 자기소개를 마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때였다.


 웅? 갑자기? 이건 뭐지?


 자자, 우리 즐겁게 강강술래 하면서 함께 이 시간을 잘 보내보자,라며 이제 막 신나게 첫 바퀴를 돌았는데, 갑자기 옆에 있던 사람에게 잡고 있던 손으로 뒤통수를 대차게 후려 맞은 느낌이랄까.


 이건 뭐, 억울함을 넘어 황당한 수준이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나는 실제로 그녀와 직접적인 대화를 한 번도 주고받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뭔가 불쾌했거나 불만이 있으려면 그래도 서로 직접적인 상호작용이란 게 있어야 생길 수 있는 거 아닌가?

 정말이지 너무 당황스럽고 뭐 때문에 그러는지 너무나도 알고 싶었다. 

 

 뭐가? 왜? 내가 뭘 어쩄는데?


 가장 컸던 건 억울함이었다. 그러다 억울함이 점점 증폭되었고 이내 화가 났다. 

 화가 나니, 가만히 있는데 웬 시비? 이건 뭐, 해보자는 건가? 하는 생각이 불꽃처럼 펴졌고 오늘 마, 그냥 확, 한판 시원하게 붙어봐? 하는 마음이 휘리릭 타올랐다. 


 하지만 나름 사회적 이미지란 것이 있으니(가식과 위선이 순기능을 할 때도 종종 있으니) 똑같은 형태로 대응하지 않고 오히려 흥분을 가라앉힌 상태에서 찬찬히 그 이유를 찾아보기로 했다.(속은 쫄보일 수도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녀에게서 명확한 이유는 듣지 못했다.  

 너 생긴 게 재수가 없다든지, 말하는 투가 맘에 안 든다든지, 너의 사고나 가치관이 영 별로라든지, 것도 아니면 옷 입는 스타일이 완전 혐오 스타일이라든지.

 그 어느 것도 이유가 될만한 것은 없었다. 

 명확한 것은 그저 나의 무엇이 그녀를 불편하게 했다는 사실 뿐이었다. 


 그녀 자신조차 원인을 알지 못하는데, 내가 알 수는 더욱더 없었다. 

 그러다 이 상황을 그 자체로 인정할 수 있게 된 결정적인 그녀의 한 마디가 있었다. 


 "제가 선생님이 저를 걸었다고 하지 않았어요. 제가 걸렸다고 했죠."


 그렇다.

 그녀는 나의 어떤 것에 의해 스스로 걸렸다. 

 스스로 걸렸고 불편함이 일어났고 넘어졌고 그래서 그것을 표현했다. 

 나는 그녀가 나의 어떤 부분이 걸린다고 했을 때 나를 공격한다고 느꼈고 인과관계상 아무런 원인 제공을 한 적이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황당하고 억울했으며 나에게 이런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게 하는 그녀에게 화가 났다. 


 그러나 엄연히 따져보면 그녀 안에서 일어났던 불편한 감정은 온전히 그녀의 것이었다. 

 아무런 원인 제공을 하지 않는 내가 억울하고 화가 났던 것은 그녀가 던진 불편한 감정에 내가 반응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화가 난 것은 내 안에 깊이 숨어 있던 좋은 사람이고 싶은 욕구 때문이었다. 

 좋은 사람이고 싶은데 누군가 너 때문에 내가 불편하다고 하는 것이 싫었던 것이다.

 그러니 결국 내가 화가 난 이유 또한 내 안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만약 내가 그녀의 감정과 욕구를 그녀의 것으로 인지하고 구분했다면 굳이 화가 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건 나도 모르는 무언가에 그녀가 스스로 자기 안에서 걸려 넘어졌기 때문이며 내가 그녀의 불편감에 부담을 느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내 것과 네 것을 구분하는 것은 관계에 있어서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결국 자신 안에 있는 어떠한 이슈와 만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누군가 필요 이상으로 화를 내거나 부적절한 수준으로 표현을 한다면 그것은 그 사람이 자신의 이슈에 걸린 것일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내 것과 구분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솔직히 그 상황은 상당히 불편한 시간이었고 긴장감으로 힘들었던 시간이었긴 했지만, 나는 그녀를 통해 머릿속으로만 알고 있던 개념을 몸으로 확실히 익힐 수 있었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세상의 모든 것에는 언제나 장단이 있다. 

이전 15화 페이스 메이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