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는 "나"
지금보다 조금 더 젊은 시절 나는 목소리가 크다는 피드백을 자주 받았다.
특히 사회 초년 신입사원 때에는 회사에서 사장님을 마주칠 때마다 종종 '니는 목소리 좀 줄이라'라고 하셨던 게 기억난다. 같은 사무 공간에 있지만 별도로 떨어진 사장님실에서도 내 목소리가 다 들린다나 뭐라나.
생각해 보면 목소리 톤도 조금 높고 울리는 편이어서 실제로 말을 하다 보면 머리가 울려 어지러워지기도 했던 것 같다.
그래서 한참 말을 많이 하다 보면 배에 힘이 들어가 있거나 머리가 갑자기 핑 돌았던 경험도 많다. 특히 체력이 달리면 그런 현상은 더 심각해져서 잠시 말을 멈추거나 얼른 자리에 앉아 휴식이 필요할 때도 있었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전혀 인지하지 못했지만, 사회생활에서 사용했던 내 목소리는 진짜 내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나만의 생존 전략이었던 것이다.
사회적 상황에서는 다소 높고 크고 밝고 쾌활한 느낌을 줄 수 있는 목소리가 필요함을 스스로 습득했고 그것이 나름의 삶의 전략이 된 것이다.
실제 그런 전략은 꽤 잘 먹혔기 때문에 나는 다소 높고 크고 활기찬 느낌의 목소리를 자주 사용했고 그래서 결국 그런 형태가 내 목소리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여기서 잠깐, 그런데 나의 진짜 목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냐고?
자연스럽지 않다는 것, 몸에 힘이 들어가고 무리가 된다는 것이 그 증거다.
특히나 우리 몸은 항상성(homeostasis)을 지향하게 되어 있다. 이는 생명이 자신의 상태를 최적화 상태로 유지하려는 경향성이다.
그럼 최적화된 상태는 어떤 상태일까? 바로 편안하고 쾌적한 상태일 것이다.
그러니 만일 내가 내는 목소리가 진정한 자신의 목소리라면 우리의 몸과 마음에 크게 무리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뭔가 무리가 되고 있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자신의 것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도 있다. 목소리뿐만이 아니라 다른 많은 영역에서도 적용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후 나이가 들면서 나는 스스로에게 편안한 진짜 목소리를 찾고 싶었다. 몸에도 마음에도 부담이 되지 않는 나만의 톤과 발성, 그리고 높이의 목소리를 말이다.
그러다 어느 여배우의 한 동영상을 보게 되었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연기를 시작했고 꽤 오랜 시간 배우라는 직업을 가지고 살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이 출연한 작품을 모니터링하는 과정에서 갑자기 자기 목소리가 너무 듣기 싫었다고 한다. 뭔가 부자연스럽고 앵앵대는 듯한, 그래서 짜증이 나면서 계속 듣기가 거북했다고 한다.
그때까지 한 번도 자신의 목소리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그녀는 그때부터 원인을 분석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여러 측면으로 분석해 본 결과,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연기를 하면서 사람들이 좋아할 것이라고 여겼던 형태의 목소리를 스스로 만들어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 목소리의 톤과 발성은 원래 자신이 가진 목소리에 반하는 형태였음을 알게 되었다.
원래 자신의 목소리가 아니라 사람들이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만들어낸 목소리를 그녀의 몸이 거슬린다는 알람을 주었던 것이다.
결국 자신만의 목소리를 찾기 위해 노력하던 그녀는 마침내 자신만의 목소리를 찾게 되었다. 결정적인 도움은 바로 발성 트레이닝을 받던 중 트레이너 선생님의 조언이었다.
선생님은 그녀에게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한 상태에서 "나"라고 말해보라고 했고 "나"라고 발화할 때의 톤과 발성이 자신에게 가장 자연스러운 목소리라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
이후 그녀는 "나"를 통해 진짜 자신의 목소리를 찾게 되었고 자신에게 가장 편안한 목소리로 연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의 목소리로 연기를 할 때 대중들 또한 억지스럽지 않은 자연스러운 그녀를 더 좋아해 주었다고 고백했다.
다양한 캐릭터를 표현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오히려 짙은 자기만의 색깔과 목소리일지도 모른다. 세상에서 오직 자신만이 할 수 있는 것을 찾을 때에야 비로소 자신으로써 가장 충만해질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을 가다듬고 가장 편안한 상태에서 "나."라고 말할 때의 내 목소리는 약간의 중간저음이었다. 너무 낮지 않고 살짝 울리는 중음의 음역대.
날숨과 함께 발화되는 "나"를 듣고 있으면 긴장이 낮아지면서 몸이 조금씩 이완되는 게 느껴진다. 그렇게 나도 나의 진짜 목소리를 찾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나도 모르는 사이 종종 다시 높고 크고 활기찬 목소리로 돌아간다.
오랜 시간 동안 사회적 목소리로 살아온 습관이 그렇게 쉽게 바뀌진 않기 때문이다.
또 살다 보면 상당 부분 활기찬 목소리가 필요할 때도 있다. 그럴 땐 크고 높고 쾌활하게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나 한 참을 그렇게 말하는 내 목소리가 어느 순간 시끄럽다고 느껴지면,
몸에서 힘이 급격하게 빠져나가고 머리가 많이 울린다고 느껴지면, 나는 순간 말하기를 멈춘다.
그리곤 "나."라고 말해본다.
나의 목소리를 찾는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나는 "나"에게 집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