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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만의 노래를 부르세요.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자유롭게 쓰기.

by 쓱쓱

생각해 보면 인간은 탄생과 동시에 누군가를 만족시키기 위한 전략을 수립한다.


영아는 그나마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자기애를 가진 존재로 인정할만 하지만, 그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 금세 타인을 의식하고 생존을 위한 전략을 수립한다.

특히 자신의 생존을 전적으로 책임지고 있는 양육자, 대부분은 엄마로부터 생존에 필요한 것을 얻어내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한다. 그렇게 엄마와의 관계에서 소위 먹히는(?) 방법들을 계속해서 발전시키기도 한다.


여기서 먹히는 방법들은 대게 엄마를 만족시키는 방법들이다. 물론 초기에는 가지고 있는 대안이 거의 없기 때문에 울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한다.

하지만 아기는 점점 울음만으로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아챈다. 울음이 길어지고 강해질 때마다 엄마의 표정이 험악해지고 거칠어진다는 것을 습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변주를 시작한다. 울다가 웃어본다. 혹은 웃다가 울어본다. 울 때 엄마의 얼굴과 웃을 때 엄마의 얼굴의 차이를 발견한다. 음.. 그렇군. 웃을 때 엄마가 따라 웃으며 손길이 부드러워진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게 타인을 만족시키는 것의 중요성을 배운다.

이 원초적인 전략은 인간의 기억에 강력하게 각인된다. 그래서 우리는 타인을 신경 쓰거나 염두에 두는 경향성을 갖게 된다.

특히나 나에게 중요한 사람이거나 소중한 관계일 때에는 더욱 강화된다. 개인차가 있을 수는 있으나 거의 대부분의 인간들은 이러한 경향성을 무의식적으로 활성화하며 살아간다. 이것은 일종의 생존 전략이기 때문에 절대성을 갖기도 한다.


이후 좋아하는 친구와 관계를 지속하고 싶을 때, 존경하는 스승에게 인정받고 싶을 때, 권력과 힘이 있는 권위자에게 잘 보이고 싶을 때 이러한 경향성은 무의식적으로 작동된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그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끊임없이 그들을 관찰하고 그들의 반응을 살핀다. 그러다 보면 수동성이 강화되면서 더욱 조심스러워지고 때론 소심해진다.


이러한 경향성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당연히 불안해진다.

혹시 내가 제안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떡하나,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그들을 만족시키지 못하면 어떡하나, 그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어떡하나.

그렇게 우리의 모든 관심과 초점이 그들에게 향하게 되고 그들에게 묶인다. 자신의 세계가 온통 그들로 채워진다. 자신에게 집중할 시간과 에너지가 없기 때문에 당연히 자신의 자리가 사라지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면서 살아간다. 결국 자신만의 노래를 부르지 못하게 된다.


사실 자신만의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인간이라는 구조상 매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자유롭게 쓰며 살아간다는 것은 더욱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이는 태어난 순간부터 형성된 우리의 사고와 심리적 구조가 이미 타인에 대한 의존성과 영향력을 기반으로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우선은 이 사실은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노래를 가지고 태어난다.

모두가 인정하는 바와 같이 인간은 언듯 보면 비슷한 것 같지만 조금씩 다른 결을 가지고 있다. 큰 카테고리 안에서 인간은 보편성을 지니지만, 그 보편성 안에서 서로 조금씩 다른 다양한 개성을 지닌다.

그리고 그 개성이 바로 자신만의 노래다. 자신만의 노래를 찾지 못하거나 부르지 못하면 결국 자기 자신이 되기가 어려워진다.


개성이 있기에 인간은 자기 자신이 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구상의 어떤 사람도 나와 백 퍼센트 똑같은 사람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우리는 자신을 자신으로 만들어주는 그 개성에 대해 잘 주목하지 못한다.

이는 보편성 안에서 누리는 안정감이 더 시급하기 때문이다. 안정감은 생존의 기본 욕구이고 그만큼 절대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안정감만을 추구하면서 개성을 찾지 못한다면 인간은 오히려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자기감, 즉 자신에 대한 존재감을 확고하게 확보하지 못하면 버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신을 자신으로 만들어주는 그 개성을 찾아 노래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만이 부를 수 있는 노래를 자신만의 목소리로 자유롭게 부를 수 있어야 한다.

누군가를 만족시키지 위한 노래가 아니라, 누군가의 기대에 미치기 위한 노래가 아니라 스스로를 만족시킬 수 있는 노래를 부를 때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나로 존재할 수 있다.

그리고 진정한 나로 존재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물론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길들려 진 뇌를 가진 우리에게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자유롭게 쓰며 스스로를 만족시키기 위해 노래한다는 것은 뇌의 기제를 변화시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좀 더 자신으로 살아가고 싶다면, 조금이라도 나 자신으로 살아가고 싶다면 이미 자신 안에 있는 자신만의 노래를 찾아 자유롭게 부를 수 있어야 한다.


자신만의 노래는 세상의 그 어떤 평가도 인정도 적용되지 않는 나만의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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