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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다정함

나를 더 사랑하게 만드는 힘

by 쓱쓱

한창 이성에 있어 외모가 중요한 큰딸에게 나는 줄곧 주문처럼 덧붙였다.


" 사람은 다정한 게 최고야, 무조건 다정한 사람을 만나렴!"


그럴 때면 큰딸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말했다.


" 그래도 난 잘 생긴 사람이 좋아, 아침에 눈 떴을 때 잘 생긴 사람이 옆에 있으면 얼마나 행복하겠어! 아무리 착하고 다정해도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면 아예 마음이 안 갈 듯~"


에고, 뭐... 아직 세상을 더 살아봐야 아는 거겠지...

그땐 아무리 말해도 도무지 알 수 없는 것들이 있으니까.

그 또래 아이들의 매우 당연한 반응이라 생각하면서도 딸을 가진 엄마의 조바심일까.

나는 큰딸에게 다짐을 받을 기세로 집요하게 굴었다.


" 진짜 다 필요 없다고! 외모는 정말 얼마 안 간다니까? 아무리 잘생겨도 지멋대로 굴면 정말 꽝이라고!"


딸은 귀찮다는 듯 엄마하고 자기는 다르다며 그렇다면 외모도 잘 생기고 다정하고 착하고 능력 있는 사람을 만나면 될 거 아니냐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에고, 드라마가 참 열일을 하는구나...

그렇게 완벽한 사람은 현실에서 존재하기 거의 불가능하다는 말을 반복했지만 역시나 그땐 아무리 말해도 도무지 알 수 없는 것들이 있으니까.


그래도...

아이돌처럼 잘 생기고 다정하고 착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 꼭 우리 딸의 짝꿍이 되면 좋겠다는 것 또한 엄마의 마음이라는 것이 아이러니다.


아, 부모는 참... 모순 덩어리다.


그래서 당신은 다정한 사람과 살고 있냐고 물으면,

나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대답할 수 있다.


"네, 참 감사하겠도요."


큰 딸 피셜에 의하면 남편의 외모는 평타다.

즉, 잘 생기지 않았다는 뜻이다.

엄마보다 키도 작고 외모도 자기 스타일이 아니라나.

어떻게 아빠를 디스 할 수 있냐며 방방 뛰는 나에게 뼈 때리는 말을 남긴다.


" 엄마한테만 멋지면 되지."


그건 그렇지..

하지만 나는 바로 응수한다.

멋질 뿐만 아니라 정말 좋은 사람이라고, 그리고 가장 중요한 다정함이 피에 흐르는 사람이라고!


딸은 아빠를 츤데레라고 표현하지만,

나는 살갑게 구는 것이 다정함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무리 말을 예쁘게 하고 친밀하게 굴어도 결국 상대를 배려하지 못하면 다정함에 이를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다정함이란 표현의 방식이라기보다는 누군가에 대해 관심을 갖고 마음을 쓰고 그 사람을 위해 자신이 해 줄 수 있음이 그 자신에게 즐겁거나 기꺼이 할 수 있음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결국 누군가에 대한 애정과 사랑으로부터 시작된다.

다만 그 사랑과 애정이 자신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그 대상을 위한 것일 때 우리는 다정함의 정수를 만날 수 있다.




밖에 나가는 길에 집 근처 세탁소에 세탁할 옷을 맡기러 가면서 찾아갈 옷이 있으면 돌아올 때 찾아가겠다고 말했더니 점원이 걱정스럽게 대답했다.


"꽤 많은데요...."


봄이 완연해 겨울 내 입었던 두꺼운 패딩들을 세탁소에 맡긴 건 남편이었다.

그때 그때 할 수 있는 사람이 하자,라는 게 우리 부부의 암묵적인 룰이지만, 남편은 항상 좀 더 남성적인 측면이 필요한 일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알아서 했다.

겨울 패딩들은 부피도 크고 무거우니까.

그래도 온 김에 내가 찾아가야겠다고 생각하고 가져가겠다고 하니 점원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세탁물이 패딩을 포함해서 14개나 되는데요..."


하하...

그럼 이따 다시 남편과 함께 찾으러 오겠다고 나오는 길에 바로 전화가 왔다.

남편이었다.


"여보! 세탁물 너무 많아! 내가 이따 퇴근하면서 차로 찾아갈 테니까 절대 혼자 고생하지 마!"


세탁물 결제를 남편 카드로 하자 남편에게 결제 문자가 간 모양이었다.

혹시라도 아내가 혼자 낑낑대며 고생할까 봐 바쁜 업무 중에도 다급하게 전화를 한 거였다.


다정함은 뻔지르르한 말과 세련된 형식에 있지 않다.

투박하고 세련되지 못해도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집중된 관심과 세심한 배려에 있다.

그 사람의 안녕과 행복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그것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빠르게 파악하는 데 있다.

결국 섬세함은 스킬이 아니라 관심과 마음씀이다.


그런 다정함을 만날 때 우리는 상대에 대한 사랑을 키워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더 사랑할 수 있게 된다.

사랑받고 배려받고 있는 자신에 대한 확신과 믿음이 강해지고 다시 누군가를 사랑하고 배려할 수 있는 여유와 힘이 생긴다.


그의 다정함이 나에게 그런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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