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점

by 쓱쓱


사람들의 가슴속엔 정점이 있지

후려치고 다독이며 오르고 싶은 저마다의 정점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부터 조준된 하나의 목표

언제일지는 모르나 언젠가는 정복할 수 있다 믿는

황홀하고 찬란한 인생의 최고봉


그러나 알게 되리 정점에 가까울수록

앞만 보고 달려오다 놓쳐버린 풍경들과

땅만 보고 올라가다 잃어버린 사랑들을


그리고는 알게 되리 정점에 가까울수록

정점에 오르고 나면 내려가야 한다는 것을

내려가는 사람에겐 박수가 없다는 것을


사람들의 가슴속엔 정점이 있지

쓰러지고 엎어져도 오르고 싶은 저마다의 정점


그러나 알게 되리 정점에 가까울수록

오르고 나면 내려가야 하는 인생의 정점


그래서 알고 있지 지혜로운 현자들은

인생에서의 정점은 오르는 것이 아니라고

앞만 보고 땅만 보고 가서는 안된다고


조화롭게 함께 가되 정점이 가까우면

찬찬히 방향을 바꿔 다른 정점을 향해야 한다고


그래야 인생이 끝까지 반짝인다고

그것이 바로 정점의 존재 이유라고





이 시를 썼을 때 나는 부글거리고 있었던 것 같다.


현실과 욕망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브레이크를 잡고 있는 그런 느낌.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다고 믿는 것들이 무궁했지만,

단 하나의 이유가 모든 것을 제어했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감정적으로 멀미가 나는 일이었다.

인간의 감정이 이토록 변화무쌍 것이었나, 를 가장 찐하게 경험하게 했고

이윽고 한 가지를 깨닫게 했다.


그 변화의 연료가 바로 내 안의 욕망이었다는 것이다.


한참을 들여다본 후 그 당시 나는 그 욕망이 정점에 대한 갈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하고 싶고 좋아하는 것에 대해 어떠한 경지에 이르고 싶은 욕망.

스스로에 대한 성취감과 주변의 박수를 향한 갈망.

무엇보다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점을 향해 노력하는 이들의 눈빛과 그들의 노력에 피가 끊어 올랐다.


나도 하고 싶은데,

나도 잘할 수 있는데,

나도, 나도, 나도.

가까스로 제어하고 있던 마음은 정점에 대한 부글거림이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정점은 결국 내려감을 포함할 수밖에 없다는 뻔한 사실이 깊게 들어왔다.


물론 삶에서 자신만의 도달하고 싶은 정점이 있다는 것 자체가 삶을 이끄는 강한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삶에서 저마다의 정점이 존재하는 이유는

도달이 아니라 그 지향점을 향해 가는 모든 과정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향해 가는 그 과정의 모든 순간이 중요하다는 것을.

앞만 보고 땅만 보고 꼭대기만 보고 가다 놓치는 것들이

어쩌면 정점에 다다르는 것보다 훨씬 더 가치 있는 것들일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무엇보다 정점은 도달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내내 나를 움직이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로부터 꽤나 긴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다시 나에게 묻는다.


여전히 내 안에 그토록 치열하게 도달하고 싶은 정점이 있는지.

꼭 올라 정복하고 싶은 꼭대기가 있는지.

정점이 과연 꼭 필요한 것인지.


요즘의 나는 둘레길에서 꽤나 행복한 것 같다.

분명 꼭대기가 보이긴 하지만,

웬일인지 기를 쓰고 올라야겠다는 욕구가 그다지 올라오진 않는다.


열심히 정상을 향해 노력하는 이들에겐 찬사와 응원을 보내지만,

둘레둘레 함께 가는 사람들과 풍경에 감탄하며 감동을 나누는 일이 참 즐겁다.


열정과 욕망의 농도와 형태가 서서히 변하고 있나 보다.

나만의 속도와 에너지에 맞게 그렇게 서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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