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보낸 거센 바람들이
휘몰아치는 가운데...
아무도 놀지 않는 놀이터 정자에
노인 두 분이 길게 누워있다.
나뭇잎은 미친 여자처럼 가지에 매달려 흔들리고
바람은 소용돌이를 만들며 바닥을 삼키는 가운데...
할머니 두 분이 피서라도 온 듯
여유롭게 드리워져 누워있다.
비둘기 떼가 바람의 몰이에 우왕좌왕 몰려다니고
낙엽과 먼지와 쓰레기들이 한꺼번에 뒤엉켜
혼동의 쓰나미가 한창인 가운데...
노인 두 분이 길게 드러누워 담소를 나누고 있다.
이런 태풍쯤이야 가소롭다는 듯이
수많은 삶의 태풍이 만들어낸
심장의 굳은살들을 어루만지며
그렇게 일상의 한 순간으로 흘려보내고 있다.
일부러 작고 귀여운 이름을 붙인다는 태풍은
어느 순간 뜨겁고 눅눅한 공기가 맴돌기 시작하면
어김없이 우리를 찾아왔다.
그해에도 태풍주의보가 발동되고
창문에 굵은 테이프를 엑스표로 붙이면서
나는 일종의 의례처럼 기도를 했었다.
올해는 이름에 걸맞게 작고 귀엽게
가볍고 조용히, 사뿐히 지나가라고.
매번 그렇듯
도통 이름이 맘에 들지 않는지
성질이 잔뜩 난 태풍은 휘몰아치기 시작했고
집안의 틈이란 틈을 모두 공략하며 거침없이 흔들기 시작했다.
노약자와 어린이는 외출을 삼가고
안전하게 집안에 머물기 바란다는 문자가 날아들었지만,
나는 노약자도 어린이도 아니니까
스스로를 설득하며
급한 볼일을 보러 외출을 시도했다.
비와 바람이 뒤섞여 어퍼컷을 날리는 바람에
우산이 이내 뒤집힐 것 같아 잔뜩 몸을 웅크린 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던 나는
순간 눈이 동그래졌다.
아파트 옆 놀이터 정자에 비스듬히 누운 할머니 두 분이
미쳐 날뛰는 비바람 속에서 편안하게 담소를 나누고 계셨다.
유유자적.
태풍이 휘몰아치든
나뭇가지와 나뭇잎이 미친 듯이 날리든
비둘기가 바람에 뒤엉켜 날아오르든
온갖 아수라장이 펼쳐지든
어느 안방처럼 편안하게
서로를 마주 보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광경은...
뭐랄까...
그야말로 어나더 레벨이라고나 할까...
주름 사이사이로 쌓인 그녀들의 애환과
거친 피부로 덮인 그녀들의 수많은 삶의 순간들이
정말이지 이런 태풍쯤이야, 하는 표정과 몸짓에
그대로 묻어났다.
태풍이 불면
삶이 온통 송두리째 날아가버릴 것만 같이
무섭고 두렵지만,
영원히 지속되는 태풍은 없듯이,
태풍 같은 삶도 결국엔 잦아드는 순간이 온다는 것을,
버티고 견디면 곧 평안이 찾아오는 날이
이윽고 도래한다는 것을,
버티고 견뎌낸 그 수많은 시간들이
그녀들에게 알려주었던 것 같았다.
그러니,
태풍이 불 때마다 벌벌 떨며 두려워하는 것보다는
나에게 주어진 여러 날들 중 하나일 뿐이라는 여유로움으로
서서히 잦아들 때까지 일상의 한 순간으로 흘려보내는 것이
훨씬 더 도움이 되는 방식이라는 것을
그녀들은 그렇게 삶으로 보여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