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청대는 바람에 온몸이 실려
이리저리 흩어지는 상상
살며시 스며드는 빛 속으로
존재가 서서히 흡수되어 부서지는 상상
견고한 껍데기 속 가장 아득한 곳으로
생각이 정착하는 상상
낙하하는 나뭇잎과 더불어
견고했던 아집이 스르르 떨어지는 상상
지금 이곳 여기에 실존하고 있으되
언제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상상
무와 유의 경계에서
공기처럼 가볍게 떠다니는 상상
나와 너와 우리의 구분이 사라지고
획과 선이 무의미해지는 상상
순간과 영원이 뒤섞이고
우주와 전체가 합해지는 상상
그렇게 모든 불확실성 속에서
가장 확실한 것만이 남게 되는 상상
상상이 가능한 모든 것을
가뿐히 뛰어넘을 수 있는 또 다른 상상
결국 태초의 그 모습으로
모든 것이 되돌려지는 상상
무의미가
가장 의미 있는 것이 되는 상상
그 시절 나는 하루를 버티는 일에만 집중하며 살았다.
‘무엇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이 나를 몰아붙던 것 같다.
매일 누군가의 시선 속에서 스스로를 증명해야 하는 듯했고,
조금이라도 멈추면 금세 뒤처질 것 같았다.
그러다 문득,
내가 쌓아온 모든 확실함이
실은 아주 얇은 껍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즈음, 바람이 세게 부는 날이 많았다.
창문이 흔들리고, 발코니의 화분이 쓰러지고,
그러다 그 소음이 내 안에서 울렸다.
그때 나는 ‘휘청거림’이 나쁘지 않다는 걸 느꼈다.
흔한 말처럼 흔들리며 깨닫는 것도 있다는 걸.
다 아는 것처럼 세상은 견고함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나는 그 바람 속에서 자주 상상했다.
내가 빛 속으로 스며들어 흩어지고,
생각이 껍데기를 벗고 가장 깊은 곳에 내려앉는 장면을.
낙엽처럼 떨어지며 아집을 내려놓고,
공기처럼 가벼워지는 나를.
그건 현실의 도피가 아니라, 존재의 재정의였다.
삶을 버텨오며 느낀 건,
우리가 ‘존재한다’고 믿는 대부분의 것들이
사실은 불안한 추측 위에 세워져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불안이야말로 우리가, 내가 살아 있는 증거이기도 했다.
나는 이제 확실함보다 불확실함 쪽을 믿기로 했다.
그 속에야말로 생명의 움직임이 있기 때문이다.
이 시는 그런 깨달음의 기록이다.
나와 너, 너와 우리의 경계가 흐려지고
순간과 영원이 섞이는 그 모호한 지점에서
나는 오히려 또렷해진 것 같다.
무(無)와 유(有)가 뒤섞이고,
존재가 증발하듯 사라지는 순간,
비로소 모든 것이 선명해졌다.
나는 그때 알았다.
무의미가 가장 의미 있는 순간이 있다는 것을.
그건 삶을 포기하는 말이 아니라,
삶의 본질을 받아들이는 나만의 방식이었다.
모든 것을 쥐려다 잃어버리던 나에게,
이제는 아무것도 쥐지 않아도 충분하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말하고 싶었다.
흩어지는 것은 사라지는 게 아니다.
그건 다만 다른 형태로 존재를 계속하는 일이다.
그리하여 나는 오늘도 흔들린다.
휘청이며, 조금씩 비워내며,
그 비움 속에서 다시 나를 채운다.
무엇보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한 이유는
뭐니 뭐니 해도
여전히 내가
상상이라는 인류의 위대한 선물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