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와 단상_매(일)뭐(라도)쓰(기) 프로젝트_7월_6일차
부엌은 삶이 이어지는 공간이다.
식구가 탄생하는 곳이기도 하고 지속되는 곳이기도 하다.
먹을 것이 있기에 생기가 넘치며 헌신이 있기에 신성한 곳이기도 하다.
또한 부엌은 집안에서 가장 따뜻한 공간이다.
실제 불이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그곳엔 엄마가 있다.
요리 실력을 떠나 엄마가 부엌에서 밥을 짓는 소리는 가장 먼저 우리의 정서적 허기를 채워준다.
음식도 음식이지만, 나를 위해 마음과 에너지를 들여 준비되는 그 과정이 식구들의 정서를 먹인다.
따듯하고 시원한, 상큼하고 구수한 음식들이 마법같이 만들어지는 공간에서 아이들은 자라고 어른들은 성숙해 간다.
이처럼 집안에서 가장 핵심적인 공간인 부엌은 절대적 권력을 갖는 대신 동시에 절대적 책임을 갖는다.
부엌은 권력과 책임의 극치를 경험할 수 있는 세상에서 몇 안 되는 공간이다.
옛부터 생사를 결정하는 권력은 먹을 것을 가진 자로부터 나왔다. 사람들은 살기 위해 먹어야 했고 먹기 위해 행동해야 했다.
결국 먹이는 사람의 권력은 절대적일 수밖에 없다. 대체적으로 엄마가 집안에서 아이들에게 절대 권력을 갖는 경우가 많은 이유다.
하지만 권력은 언제나 책임을 수반한다. 특히 절대 권력일수록 막중한 책임이 부여된다.
먹을 것을 책임진다는 것은 생사를 책임진다는 것과 같다. 며칠 기분이 내키지 않는다는 이유로 부엌을 가동시키지 않는다면 그 결과는 치명적이 된다.
기분이 내키지 않아도, 귀찮고 번거로워도, 심지어 몸이 아프고 힘들어도 부엌에 불이 켜져야 비로소 삶이 유지된다.
책임을 진다는 것은 언제나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하는 태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 있기 때문에 권력도 유지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건 뭐니 뭐니 해도 사랑이 아닐까?
그 어떤 것도 사랑이라는 견고한 동심원 안에 있지 않으면 본래의 속성을 잃게 될 수 있으니까.
요즘엔 배달 음식이 부엌을 대체한다.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느껴지는 깊은 허기는 음식에 있지 않다.
그것은 정서적 허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