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단어와 단상_매(일)뭐(라도)쓰(기) 프로젝트_7월_5일차

by 쓱쓱

세계화가 본격화되기 전 90년대 후반만 하더라도 소식을 듣고 전하는 것이 참 어려웠다.


특히 해외에 사는 사람의 경우에는 더욱 그랬다.

전화 카드를 구입해 공중전화박스 안에서 전화를 걸면 뚜뚜, 하며 아주 미약한 신호 소리가 거대한 바다를 힘겹게 건넜다.

그 소리가 거의 희미해질 무렵, 그렇게 짧지만 긴 시간의 간격을 견디면 마침내 그립고 반가운 사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밥은 잘 먹고 다니는지, 어디 아픈 곳은 없는지 매번 똑같은 인트로가 지날 때 즈음부터 카드의 돈이 차감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나는 마음이 급해졌다. 그렇게 통화는 언제나 횡설수설하다가 끊기 일쑤였다.

그러나 결국 듣고 싶었던 말이나 하고 싶었던 말은 거의 비슷했다.

우리 모두 무사히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구체적으로 잘 지내고 있는지 일일이 삶을 나누지 못했지만, 우리 모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생존해 있다는 소식이었다.


지구 건너편으로 딸을 보낸 부모님은 딸의 사정이나 삶의 내용이 아닌 그저 딸의 목소리가 소식 자체였을 것이다.

지구 건너편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딸은 홀로 견뎌야 하는 삶의 무게보다 타국에서 무사한 부모님의 목소리 자체가 다행스러운 소식이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소식의 영향력은 사정이나 내용보다는 그 대상에 있는 것 같다.


요즘 우리는 소식의 과잉 시대에 살고 있다.

심지어 별로 듣고 싶지 않은 소식들이 초 단위로 쏟아진다.

나는 종종 알고 싶지 않은 소식을 때려 붓는 형태에서 폭력성을 느낀다.

알고 싶은 사람의 소식은 모른 체 알고 싶지 않은 소식을 억지로 듣게 되는 것은 불쾌를 넘어 고통스럽게 만들기도 하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요즘엔 특히나 보고 싶고 궁금한 사람들의 소식이 더 듣고 싶다.

자주 소통은 못하지만 항상 동일한 마음으로 응원하고 있는 소중한 인연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내친김에 오늘은 들려오기를 기다리지 말고 직접 들으러 전화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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