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와 단상_매(일)뭐(라도)쓰(기) 프로젝트_7월_28일차
나는 여전히 밤을 좋아한다.
실제로 예전엔 하루 중 질적으로 가장 생산적인 활동을 할 수 있었던 때가 밤이었다.
학창 시절 내내 시험공부를 하면서 수없이 밤을 새웠고 밤이 주는 집중력의 수혜를 받았다.
그 후로도 나는 밤을 영감(靈感)의 시간이라고 불렀다.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이 몰려오는 아침과 그 일을 해내느라 분주한 점심, 벌려 놓은 일들을 매듭짓기 위해 바쁜 저녁을 지나야 비로소 일상을 뛰어넘는 시간이 왔다.
공식적으로 하루가 끝났음을, 그러니 이제 더 이상 어제의 일상에 메여 있을 필요가 없음을 밤은 그 거대한 검은 휘장을 늘여 치며 알려주었다.
그렇게 깜깜한 밤하늘 아래 세상은 잠이 들었고 분주함이 멈추면서 영감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본격적으로 글을 써보고 싶던 시절, 나는 밤마다 영감님(?)을 기다렸다. 창조에 대한 열망이 꽤 뜨거워서 스스로를 불태우던 시절이었다.
가끔 써졌고 자주 안 써졌다.
자주 써지고 가끔 안 써지고 싶어 밤마다 오지도 않는 영감님을 불렀고 숱한 실망과 허무함으로 밤을 보냈다.
지난밤에 낳은 결과물들을 밝은 아침에 보면서 민망함에 얼굴을 붉히기가 일쑤였다.
그러나 나는 그 밤에 내가 경험했던 모든 감각과 느낌과 생각의 변화와 가슴의 움직임을 기억한다.
그 밤에 내가 만들었던 세계와 인물들과 사건들을 고스란히 기억한다.
무언가를 창조한다는 것의 고통과 희열과 충만함을 피부로 기억한다.
어린 두 딸을 키우며 낮 동안 고갈 되었던 고양된 정신 활동과 여전히 내가 사회에 연결되어 있다는 연결감을 기억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밤은 하루의 끝이 아니라 매번 새로운 하루의 시작이었다.
밤이 그 마법 같은 시간을 통해 내일을 다시 살아갈 수 있도록 신비한 힘을 만들어 준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요즘엔 온전히 밤을 만나기가 힘들어졌다.
나이가 들면서 졸음이 몰려와 늦은 밤까지 도저히 버틸 수가 없게 된 것이다.
뭐, 꼭 밤에만 창조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라며 스스로를 설득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깜깜하고 고요한 밤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