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존재와 가치

그 자체로 갖게 되는 것

by 쓱쓱

그녀는 꼼꼼함이 중요한 이유가 가치 때문이라고 했다.


물론 꼼꼼함에서 가치까지 가는 과정에는 여러 인식적인 탐색이 있었다.

평소 꼼꼼함에 매달리는 이유는 실수하고 싶지 않아서이고 실수하고 싶지 않은 이유는 인정받고 싶기 때문이며 인정받고 싶은 이유는 그래야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럼 인정받지 못하면 가치가 없는 것인가?라고 물으니 또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했다.

인정받지 못해도 가치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지만 정작 자신에게는 항상 인정받지 못하면 가치가 없다고 쉽게 규정한다.


이것은 매우 자동적인 메커니즘이기 때문에 인식이 끼어들 틈도 없이 이루어지는, 좀 잘난 척을 해보자면, 자동적 사고이다.

자동적 사고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같은 형태로 반복되는 과정을 통해 자동적으로 반응하게 되는 사고를 의미한다.

흔히들 뇌에 뚫린 고속도로 회선이라고 표현하는데 딱히 노력하지 않아도 유사한 자극에 자동적으로 불이 탁! 켜지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어떤 것의 가치를 논할 때, 타인의 인정은 매우 중요한 요인이 되는 듯하다.

스스로 아무리 가치가 있다고 우겨도 주변에서 많은 사람들이 시큰둥하게 반응하면 종국에 가치가 있다고 인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흔히 가치를 논할 때 타인은 절대적인 영향력을 갖는다.

만약 이 말에 동의한다면 말이다.


아니면, 일단 이렇게 한번 생각해 보자.


여기 두 개의 에코백이 있다고 해 보자.


하나는 명품의 명품, 에르메스 매장에서 시즌 스페셜 한정판으로 유명한 디자이너와 콜라보한 에코백이 있다고 하자. 에코백이지만 왠지 바닥에 내려놓으면 안 될 것 같은 고급진 느낌이 물씬 풍긴다.


다른 하나는 사은품으로 받은 에코백이다. 물론 어디서 받은 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크기도 적당하고 내구성도 튼튼해서 이것저것 몽땅 넣어 다닐 수 있는 편안한 보따리 같은 느낌이다.


여기서 어떤 것이 더 가치가 있냐고 물으면 사람들은 자신들의 가치관을 기반으로 여러 반응을 보일 것이다.


먼저 소장가치를 우선시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에르메스 에코백이라고 말할 것이다. 모두가 인정하는 브랜드이고 한정판이니 더 말해 무엇하랴. 에르메스의 1승이다.

교환가치를 따져봐도 에르메스는 높은 가치를 지닌다. 일단 비싸다는 인식이 있으니까 사람들이 쉽게 교환하려 하지 않을까. 에르메스 2승이다.


하지만 너무 고급지고 비싼 물건이라 소중히 모셔만(?) 둔다면 글쎄.., 에코백이라 할 수 있을까?

자고로 에코백이란 온갖 종류의 물건을 편하게 다 담아 이동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사은품으로 받은 에코백이 훨씬 사용가치가 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사용가치에서는 사은품의 1승.


뭐, 이렇게 가치에 대해 하나씩 따져가며 어떤 것이 더 가치가 있을까를 비교하다 보면 결국 가치란 타인의 인정이건, 나의 인정이건 '부여된다'라고 볼 수 있다. 어떤 대상에 사람들이 인정해 주거나 내가 인정하면 가치가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에르메스 에코백도 상은품으로 받은 에코백도 에코백은 존재한다는 것 그 자체로 가장 기본적인 1차적 가치를 갖는다. 다시 말해 이것은 어떤 조건에 의한 가치가 아니라 일종의 무(無)의 상태에서 시공간을 차지하는 존재(存在) 그 자체에 대한 가치를 의미한다.


실제 아무것도 없을 때에 우리는 아무것도 부여할 수 없다. 대상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무엇을 떠올릴 수조차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것이 존재하게 되면 그때부터 무언가를 떠올리수 있게 되고 가치를 떠올릴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어떤 것이 존재한다면 그 존재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고유한 1차적 존재가치를 갖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존재가 갖는 가치이자 의미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갖게 된다는데 있다.

거기에, 여기에, 있다는 것 자체로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갖게 되는 가치.


그렇다면 이제 왜 우리가, 자신이 가치가 있는지 이해될 것이다.

딱히 뭘 잘해서, 무언가에 도움이 돼서, 완벽해서, 멋져서, 기능이 좋아서, 기여를 해서가 아니라,


그저 지금 거기에, 여기에, 당신이, 내가,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 그 자체로 모두 원천적인 가치를 갖는다.

그러니 나를, 그와 그녀를, 우리의 가치를 그 자체로 인정해 주는 일은 가장 기본적인 태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결국 이 세상에서 절대적 가치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존재의 가치이기 때문이다.






keyword
이전 06화당신을 읽어주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