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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노란 Jul 22. 2016

나의 미니멀리즘

환경과 동물을 생각하는 나만의 방식

요즘 TV나 책, 인터넷 등을 통해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들 모두가 적게 소유하며 살기 위해 노력하지만 신기하게도 왜 적게 소유하며 사는지에 대한 이유는 각자 다릅니다. 깔끔한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너무 많이 소유하는 삶에 지쳐서, 뭔가 변하지 않을까 기대하는 마음으로.


저는 제가 사는 작은 터전이 환경과 동물에 나쁜 영향을 덜 미쳤으면 하는 마음에서 미니멀리즘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죽은 뒤 내가 가진 물건들은 땅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샴푸와 비누 중에서 물을 덜 오염시키는 것은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잘 먹으면서 덜 먹을 수 있을까? 등 살면서 했던 많은 고민들에 대한 해답이 미니멀리즘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아주 어렸던, 국민학교도 입학하기 전이었던 때, 시골에 사시는 할머니 댁에는 커다란 진돗개 한 마리가 살고 있었습니다. 제 키만큼 컸던 그 개는 특별히 지어진 이름이 없어 그냥 누렁이, 멍멍이처럼 아무 이름으로나 불렸습니다. 누군가 나타나면 꼬리를 흔들며 이리 뛰고 저리 뛰지만 목줄에 걸려 멀리 가지는 못하고 제 자리를 빙글빙글 맴돌았습니다. 저에겐 그 모습이 무섭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해서 구석에 쪼그려 앉아 누렁이를 빤히 바라보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 댁 마당에 들어섰는데 누렁이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날 저녁에 식구들은 "맛있는 돼지고기"를 먹었습니다. 저는 어렸지만 그것이 돼지고기가 아니라 누렁이였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가난한 시골에서는 고기를 먹기 위해 개나 토끼, 염소와 닭 등을 키웠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너무나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저는 온갖 종류의 고기를 거부하게 되었고 2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여전히 짙은 고기 냄새를 맡으면 구역질을 하거나 정신이 아득해집니다.


과학 기술의 발달로 우리는 어디서나 원하는 음식 거의 대부분을 양껏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품종 개량된 가축, 그들이 길러지는 비인도적인 장소와 방식, 고통스러운 도축 과정에 대한 문제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육식과 관련된 정보들을 알게 된 후 의식적으로 채식주의를 지향하기도 하지만 저는 고기 거부 덕분에 처음부터 좋아하는 것과 가치관 사이에서 일어나는 싸움에서 떨어져 살 수 있었습니다.




직장 생활을 시작했을 무렵 저는 고양이 두 마리를 식구로 맞이했습니다. 억지로 사람 음식을 먹으며 괴롭힘 당하던 아기 고양이와 길고양이가 낳은 새끼였습니다. 저는 작고 귀여운 두 생명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퇴근하고 돌아오면 무릎을 빌려주고 침대에 누워 고양이들을 쓰다듬어 주다 잠이 들고 주말에는 장난감으로 신나게 놀기도 하고 슬픈 날은 포근한 아이들을 안고 마음에 위안을 얻기도 했습니다.



어느 주말 아침, 저는 고양이들을 무릎에 올려놓고 화장을 했습니다. 그 날 따라 피부가 건조한 것 같아 얼굴에 미스트를 쏘았는데 갑자기 고양이들이 재채기를 하더니 저 멀리 도망가 버렸습니다. 깜짝 놀라 멍하니 고양이들이 숨은 곳을 바라보고 있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사용하고 있는 화장품들이 내가 사랑하는 아이들을 아프게 할 수도 있겠구나! 당장 인터넷을 열어 작은 동물들과 화장품 사이에서 일어나는 실험에 대해 알아본 뒤 관련된 회사의 제품들을 모두 쓰레기통에 버렸습니다. 이것은 제가 미니멀리즘을 시작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고, 지금 제 화장대에는 로션 두 가지와 선크림, 색조 화장품 몇 종류만이 남게 되었습니다.




환경을 보호하고 동물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입니다. 털이나 가죽, 고기를 얻기 위해 동물의 목숨을 빼앗는 것뿐만 아니라 집을 짓고 자원을 얻기 위해 파괴한 환경과 그로 인해 터전을 잃어 더 이상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게 된 수많은 동물들에 대한 문제도 생각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환경과 동물에 덜 영향을 끼치기 위한 방법으로 선택한 미니멀리즘은 번거롭고 귀찮습니다. 삶의 사소한 많은 부분에서 어떻게 하면 덜 소유하고 덜 먹고 덜 사용하고 더 불편하고 더 빨리 흙으로 돌아가는 제품을 고를지 고민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일회용 봉투를 사용하지 않기 위해 편의점에서 산 물건을 양 팔에 한아름 안고 오는 제 모습을 본 친정 엄마는 너 그런다고 아무도 상 안 준다며 걱정 어린 핀잔을 주기도 하십니다.




물론 미니멀리즘만이 환경과 동물과 함께 사는 삶에 대한 답은 아닙니다. 미니멀리즘이라도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무언가 구입하고 사용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채식 위주의 식사에 만족하지만 엄마로서 딸에게 영양이 풍부한 식사를 제공하기 위해 고기를 구입해야 하고, 비염이 심한 남편을 위해 안전하고 따뜻하지만 가급적 자연과 가까운 곳에 지어진 집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며, 스스로를 아름답게 꾸미거나 좋아하는 활동에 필요한 물건들을 소유하길 원하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무언가를 구입하고 사용해야 한다면 조금 번거롭고 귀찮더라도 우리가 사용할 제품이 어떤 것인지 더 자세히 알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품종의 가축을 어떻게 사육 및 도축하여 어떤 방식으로 보관하다 판매하는 것 인지, 옷과 화장품은 어떤 성분으로 만들어져 어떤 방식으로 안정성이 판정되었는지 등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보다 많은 것들이 보이게 됩니다.


제품에 대해 알게 되면 더 좋은 방식으로 생산된 제품을 구입하는 것을 고려해 볼 필요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더 좋은 방식으로 생산된 제품에 비용을 지불해서 판매자가 이익을 얻는다면, 환경과 동물에게 덜 해를 끼치는 방식으로 물건을 생산하고 제공하는 것을 장려할 수 있습니다. 다행히 요즘은 좀 더 좋은 식품이나 물건을 제공하려는 사회적, 기업적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어 마음만 먹는다면 쉽게 환경이나 동물을 생각하는 방식으로 소비를 할 수 있습니다.




누구든 자신만의 방식으로 환경과 동물을 사랑하고 지켜주려 노력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했는가, 그리고 얼마나 행동으로 옮겼는가 하는 것입니다. 자연은 결코 상냥한 존재가 아니지만 주는 만큼 돌려주는 공평함을 가진 존재이므로 우리가 열심히 노력한다면 결국 우리를 따뜻하게 안아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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