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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노란 Nov 12. 2024

그럼에도 사랑하고 싶어서

상처입고도 다시 살아야만했던 날들에 대하여

숨을 쉬고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서 상처가 없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누구나 저마다의 아픔이 있고, 저마다의 고통과 저마다의 상처를 품고서 그럼에도 하루하루를 살아가지요.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저 역시 상처 받고 그것을 보듬어 치유하며 살아왔습니다.


자기표현이 넘쳐나는 시대입니다. SNS와 각종 매체를 타고 쉴새 없이 일면식 없는 타인의 생각과 삶을 마주하곤합니다. 내가 모르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놀라운 소식을 접하거나 과거였다면 몰랐을 신비로운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은 분명 축복이나 그만큼 부작용도 큽니다. 언제 어디서든 내 의지와 상관없이 타인을 극렬하게 혐오하는 글을 접하게 되는 순간이 많아졌습니다.


남을 미워하는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습니다만 대체로 우리는 남이 내게 피해를 주었을 때 상대방을 미워하게 됩니다. 상대방이 나 혹은 나와 소중한 누군가에게 가한 물리적인 피해나 정신적인 피해, 금전적인 손해나 나에게 주어졌을지도 모를 좋은 기회를 빼앗아갔기 때문에 상대방을 미워합니다. 이것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정당한 분노는 자신의 권리를 지키는데 도움이 되고, 지금 제가 누리는 자유와 안전의 대부분은 저 이전에 누군가가 상대방과 치열하게 싸워 쟁취해 낸 것이니까요.


타인을 미워하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격렬하고 뜨거워서 몸과 마음의 힘이 아주 많이 필요합니다. 때문에 저는 살면서 마주한 대부분의 갈등 상황에서 상대방을 미워하고 다투기 보다 용서하고 포용하기를 선택했습니다.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저를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저는 살면서 열 번의 연애를 했고 세 번의 청혼을 받았습니다.

저에게 고백했던 모든 사람의 이름과 얼굴을 전부 기억할 수 없을 만큼 수많은 마음을 받았습니다. 저와 헤어진 누군가는 저를 잊지 못해 자신에게 고백하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오랫동안 저를 그리워하기도 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누군가는 저에게 '부럽다'고 말하곤 합니다. '예뻐서 좋겠다. 인기 많아서 좋겠다.' 그런 말을 들으면 저는 그저 웃습니다. 물론 좋은 기억도 많지요. 향긋한 아카시아 나무 아래서 '예쁜 후배님. 왜 여기서 울고 있어요.'하고 다정하게 말 걸어주는 선배를 만났을 때나, 술에 취해 집으로 돌아가는 저를 붙잡고 '누나 좋아해요.'하고 수줍게 고백하던 녀석과 눈을 맞추던 때처럼 사랑의 기억은 달콤하고 아름다운 것들로 가득하니까요.


하지만 아쉽게도 적당히 예쁘고 사근사근하고 잘 웃는 성격은 이용 당하기 쉬울 때가 많았습니다. 왜 자신을 좋아해주지 않냐는 원망의 말을 들어야 했고, 높으신 분들의 옆에 앉아 술을 따라야 했고, 이 업계에서 살아남고 싶다면 자신과 밤을 보내야 한다는 상사의 협박을 받아야하기도 했습니다. 그저 한 번 자보고 싶었다는 이유로 거짓 고백을 하거나 과하게 술을 먹이려 드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여자라서, 예뻐서, 잘 웃어서, 몸매가 좋아서, 몸매가 드러나는 옷을 입어서, 그래도 괜찮을 것 같아서. 저를 상처준 사람들은 여러 변명을 늘어놓았습니다. 저는 결국 제가 선택하지 않았거나 더 잘 살고 싶어서 선택한 것들로 인해서 상처 받아야 했습니다. 쓸모 없는 것. 이렇게 살아서 뭘 하나.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렸습니다. 할수만 있다면 얼굴을 가면으로 가린 채 살아가거나 사회와 완전히 격리된 채 살아가고 싶었습니다. 방에 틀어 박혀 아무도 만나지 않은 채 오래 울었고, 제대로 먹지 않았습니다. 타인에게 받은 상처 때문에 나 자신까지 미워하게 되었습니다.




그대로 저를 상처준 사람들을 미워하며 살아갈 수도 있었겠지만 저는 그러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처럼 상처 받은 사람들을 위해 정책을 수립하고 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해 애쓰는 또 다른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았지만 저는 그들처럼 남과 대립할 힘도 용기도 없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제 선택이 비겁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저는 사랑 하고 싶었고, 사랑 받고 싶었습니다.


꽤 자주 누군가에게 제 마음을 쏟아주고 싶어서 견디기 힘든 순간이 옵니다. 결혼 12년차가 되었지만 저는 여전히 남편에게 입맞춤을 쏟아내고 남편의 커다란 몸을 품안 가득 끌어 안으며 끊임 없이 사랑을 속삭입니다. 하루라도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아나는 사람처럼 그렇게 사랑을 고백하고 또 고백합니다.


그렇다고 그저 주기만 하는 걸로 만족하는 멋진 사람은 아닙니다. 저는 남편이 저를 깊이 사랑해주길 바라며 매일 밤 남편의 품에 뺨을 비비며 '여보, 나 사랑해?'하고 묻습니다.  남편이 '그러엄. 사랑하지.'하고 대답해 줄 때까지 끊임 없이 묻고 또 묻습니다.


사람들은 부부가 어쩜 그리 사이가 좋고 사랑이 많으냐며 부러워합니다. 저는 역시 그저 웃습니다. 지금 제가 누리는 사랑은 제가 살면서 받은 수많은 상처 위에 세워져있습니다. 여러 번 이어진 연애가 그저 좋은 추억이 아니기에 순간이 더욱 소중하거든요.


과거의 제가 더 상처 받지 않기 위해 '남자는 위험해. 그러니까 사랑 같은 건 하지 말자.'라고 생각했다면, 혹은 '나는 쓸모 없는 인간이야. 나는 나를 지킬 수 없으니 조용히 숨어 살자.'라고 생각했다면 지금의 저는 존재하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남자는 위험해. 하지만 그래도 사랑하고 싶어.'라고 생각했고, '나는 쓸모 없는 인간이야. 그래도 행복하고 싶어.'라고 생각하며 한걸음씩 더 내딛었습니다. 브런치를 통해 그렇게 다달은 오늘에 대해 적어보려 합니다.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품고 오랜 시간 무엇을 써야할지 고민했습니다. 에세이는 대단한 무언가를 이룩한 사람이 쓰는 거라던데 제가 가진 것이라고는 보잘 것 없는 글솜씨와 평범하고 평화로울 뿐인 삶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고민을 거듭한 끝에 지금의 '평화로움'에 이를 수 있었던 이야기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무수히 상처 받았던, 그럼에도 다시 사랑하고 싶어서 발버둥 치던 날의 기억이라면 남들과 다른 글을 빚어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읽힐지 몰라 두려운 마음이 큽니다만 용기를 내서 틈 날 때마다 덧붙여 글을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따스하고 편안한 가을날 보내세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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