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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노란 Mar 24. 2024

나는 내가 중산층이라 생각했었다

이토록 힘겨웠던 중산층의 삶

대한민국은 중산층이 많은 나라라 한다. 국민 대부분이 자신을 중산층이라 생각한다고 하고, 나 역시 그랬다. 비바람을 피할 집이 있고, 한 겨울에 따뜻한 물 쓸 수 있고, 한 여름에 선풍기 바람을 쐴 수 있으며, 밥이 없어 배를 곪지는 않으니 부자는 아니어도 가난하지는 않은 중산층 쯤인 줄 알았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언제나 돈에 시달렸다.




학창 시절 나는 한 달에 용돈 만 원을 받았다. 만 원은 보고 싶었던 책을 한 권 사면 사라지는 돈이었다. 책을 좋아했던 나는 대체로 떡볶이와 책 중에서 책을 선택했고, 친구들이 학교 앞 분식집에서 떡볶이를 사먹을 때 혼자 급식실 밥을 먹었다. 나는 급식실 밥을 좋아했다. 매일 다른 반찬이 나오고 수요일은 특식도 나오는 급식실 밥을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선생님들께 교사용 문제집을 빌려 공부했고, 미대에 가고 싶어 입시미술을 했으나 다른 친구들은 다 가는 방학 특강을 가지 못했다.


대학교에 입학한 뒤에는 오예스 한 개와 요구르트 한 개로 점심 식사를 대신했다. 아침과 저녁을 기숙사 식당에서 먹을 수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학교 A동 1층에 놓인 200원짜리 자판기를 나는 사랑했다. 상냥한 조교 언니 덕분에 매 학기 장학금 신청 기간을 놓치지 않고 장학금을 받았으며, 용돈은 봉사장학생 활동이나 나를 어여뻐했던 선배들이 나눠준 디자인, 일러스트, 편집 아르바이트를 통해 충당했다. 사생활이 보장되지 않는 기숙사 생활이 답답해 뛰쳐나와 구한 자취방은 바퀴벌레와 붉은 개미, 쥐가 번갈아 드나드는 아주 오래된 집이었고 나는 그 집에서 우울증을 얻었다.


쇼핑을 해본 적도 없었다. 백화점은 물론이고 마트 조차 내게는 먼 곳이었다. 친구들이 이거라도 바르고 다니라며 생일 선물로 썬크림을 사줬다. 밥이 없는 주말에는 굶기 일쑤였고, 나는 늘 빈혈에 시달렸으며 기운이 없으니 햇빛 아래서 10분만 걸어도 어지러웠다. 비쩍 마른 덕에 주변에서 작아진 옷을 내게 주는 일이 많았고, 20대의 나는 남이 준 옷들로 옷장을 채웠다. 이면지를 얻어다 뒷면에 글을 썼다. 나에게는 취향이 존재하지 않았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있고 그것을 힘껏 좋아하며 사는 사람들을 동경했지만 다람쥐가 도토리 모으듯 손에 들어오는 건 뭐든 버리지 않고 모아두는 나에게 취향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었다.


다행히 대학 간판이 나쁘지 않은 덕에 꽤 이름이 알려진 회사에 들어갈 수 있었다. 나는 거기서 만난 남자와 사랑에 빠져 곧장 결혼을 약속했다. 남자는 좋은 사람이었지만 역시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사람이었고, 내게 더 좋은 것들을 선물해주고 싶은 마음에 작전주에 투자했다가 모은 돈을 전부 날리고 대출 빚만 남겨둔 상황이었다. 나는 직장생활을 하며 모아둔 돈의 일부로 남편의 빚을 갚아주었고 다시는 주식에 손을 대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결혼한 지 10년이 넘었으나 남편은 여전히 주식을 하지 않는다. 덕분에 주식, 펀드, ETF 등을 알아보고 투자하는 일은 전부 내 몫으로 남았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의 우리는 양가의 지원을 거의 받지 못했다. 그 달 받은 월급으로 그 달의 결혼 준비금을 내는 희안한 방법으로 결혼했다. 그런 우리에게 전셋집 보증금 따위가 있을 리 없었고 우리는 신용대출을 받아 원룸 월셋방의 보증금을 마련했다. 우리는 밤이면 고기 냄새가 진동하는 먹자 골목 옆, 해가 들지 않는 오래된 월셋방에 각자 쓰던 살림살이를 들고 와 신혼 살림을 차렸다. 침대, 냉장고, 세탁기. 결혼하며 우리가 산 살림의 전부였다. 우리는 젊은 몸뚱이와 또래보다 약간 높은 수준의 연봉, 2천만 원짜리 대출만 들고서 결혼 생활을 시작했다.


이런 우리의 유일한 위안은 학자금 대출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것과 양가 부모님이 각자의 노후 준비를 어느정도 해두셨다는 정도 뿐이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와준 10억이라는 큰 돈은 부자 부모님을 만나 증여나 상속이라는 방식으로 손에 넣은 돈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이때의 우리는 미래의 우리에게 얼마의 돈이 생길지에 대한 아무런 기대도 없었다. 우리는 그저 주어진 하루를 열심히 살면서 아직 나이가 어리니 시간이 지나면 상황이 조금 더 나아지겠지 생각했을 뿐이었다. 이때의 우리는 그저 행복했다. 종종 싸웠지만 좁은 집에 고양이들과 붙어 사는 나름대로 낭만이 있는 일이었다. 젊었고, 신혼이기에 가능했던 같기도 하다.


이토록 꿈도 희망도 없어보이는 우리 부부에게 어떻게 10억이라는 큰 돈이 생겼을까.

...그러게나 말이다. 내가 생각해도 신기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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