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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노란 Mar 30. 2016

미니멀리즘 실천 4: 작업실 서랍 비우기

그림쟁이의 필기도구 정리하기

저는 그림 그리는 것도 무척 좋아합니다. 학창 시절 수업시간에는 교과서 가득 그림을 그렸고 대학에서도 그림 그리는 것을 배웠습니다. 저는 글 쓰는 것도 좋아합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는 글 쓰는 일을 하며 돈을 벌었습니다. 아이를 낳고 일을 쉬는 지금도 틈 날 때마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쓰고 그리는데 사용되는 도구들을 필요 이상으로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이 도구들 역시 정리를 피해갈 수 없었습니다. 미대 입시 시절 매일같이 깔고 앉아 찌그러진 화구 박스와 낡아서 색이 물든 철제 팔레트, 오랜 시간 사용하지 않아 굳어버린 물감들이 정리 대상 1호였습니다. 10년 넘게 품어온 정든 물건이라 큰 맘먹고 빠르게 버려 버리는 바람에 안타깝게도 사진을 남겨 놓지 못했습니다.


정리한 입시 도구 중 유일하게 사진이 남아 있는 붓


제가 정리하지 않고 남겨둔 미술 도구는 다음과 같습니다.

- 파스텔, 색연필, 콘테 각 1세트씩, 연필과 지우개 다수, 연필 깎기와 연필깍지 1개

- 붓, 나이프 각 1개


남겨둔 미술 용품들


굳지 않는 미술 용품은 1세트씩 남겨 두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연필과 지우개는 매우 소비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정리하지 않고 여분을 모두 남겨 두었습니다. 그 외에 보조 도구들은 모두 1개씩만 남겨 두었고요.


남겨둔 붓은 제가 구입했던 것 중에 가장 비싼 바바* 제품이었는데 큰 그림을 그리는 입시 미술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았지만 자그마한 그림을 주로 그리는 평소에는 종종 유용하게 사용했기에 남겨 두었습니다. 저렴한 붓은 오래 사용하면 끝이 갈라지거나 퍼지는 등의 문제가 생기기 마련인데, 요 비싼 붓은 아직도 탱탱하게 자신의 위엄을 뽐내고 있어 무척 예뻐 보였습니다. 또 물감용 나이프는 나중에 아이가 조금 더 크면 아이용 물감을 퍼내는 데 사용하기 위해 남겨두었습니다.




서랍 한 칸을 차지하고 있던 필기구들도 정리했습니다. 글 쓰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필기구를 종류별로 무척 많이 샀는데, 또 그만큼 많이 잃어버렸습니다. 메모한답시고 가방에, 주머니에 넣어 가지고 다니다가 여기저기 흘리거나 두고 온 거지요. 덕분에 제가 서랍에 가지고 있는 필기구는 그다지 많지 않았습니다. (집 어딘가에 있을 테니 정리를 하다 보면 어딘가에서 또 나올 거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소파 아래, 책장 밑, 주방 서랍 등등 필기구가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장소가 아주 많이 남아 있습니다.)


정리 당시 가지고 있던 필기구들


정리 후 남겨진 필기구는 다음과 같습니다.

- 만년필 1자루와 검은 색 잉크 1병

- 연필 1자루와 샤프 2자루, 샤프심 1통, 지우개 1개

- 사인펜과 볼펜, 색연필 각 1자루, 형광펜 2자루, 수정 테이프 1개

- 커터 칼 1자루와 커터 칼 심 1통


남겨진 필기구는 필통에 넣어 책상 한 켠에 올려 두었습니다.


정리를 결심하기 가장 어려웠던 물건은 바로 만년필이었습니다. 어렸을 때는 저렴하고 색이 다양한 필기구를 색상별로 굵기 별로 아주 많이 가지고 다녔는데 나이가 좀 든 뒤에 만년필의 매력에 빠져들어 기존의 펜들은 모두 잃어버리고 만년필로 대체했습니다. 만년필도 기존에 사용하던 몇 천 원짜리 필기구만큼이나 굵기며 색이며 필기감이 다양했으니까요. 물론 가격이 그 몇 십배라 주변의 지인들과 품앗이를 해야 했지만요. 하지만 5년 정도 사용해 보니 색을 자주 바꾸는 건 세척이 번거롭고, 여러 자루를 가지고 다니기엔 가방이 무거워서 자주 사용하는 것 하나만 계속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동안 여기에 들인 돈이 조금 아쉽긴 하지만 이번 기회에 정리를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추가로 서랍 속에 있던 물건 중 사용하지 않는 카메라와 문구 소품, 공책들, 언젠가 쓰겠지 라는 생각으로 10년 넘게 차곡차곡 모아 두었던 이면지 한 박스를 모두 정리했습니다. 기준은 예전에 옷장이나 화장품을 정리했던 것과 같았습니다. 쓸만한 물건 중 가격이 비싼 것은 중고 판매하고, 가격은 비싸지 않지만 아직 쓸만한 것들은 주변 이웃들에게 나눠주고, 사용이 불가능한 것은 모두 쓰레기통에 넣어 주었습니다. 문구류가 대부분 사용감이 있는 소모품이다 보니 기부는 할 수 없었습니다.


정리 해고 된 필기구들
10년 동안 모아온 이면지들 이제는 안녕...


이 정리 작업을 통해 작업실 책상 아래 자리하고 있던 서랍 하나가 통채로 비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필기도구는 대부분 정리가 되었습니다만 아직 큰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바로 이미 사용하여 내용이 가득가득 차있는 각종 스케치북과 노트들입니다. 정말 오랜 시간에 걸쳐 적어 놓은 일기, 독서 감상문, 그림, 미래의 계획과 다짐 등등 그 내용도 각양각색의 노트가 백 여권이나 쌓여있습니다. 이만한 박스가 친정에 두 개나 더 있다는 사실이 저를 매우 골치 아프게 합니다.


아직 반도 풀어놓지 못한 노트들


미니멀리즘의 핵심은 "꼭 필요한 것만 소유한다."입니다. 이 노트 속의 내용들은 물론 저에게 필요하지만 노트 자체는 저에게 꼭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또한 이 많은 노트 속에는 분명 중복되는 내용도 있을 것이고 오랜 시간 보관할 가치가 없는 것도 있을 것입니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이 노트들을 모두 들춰본 뒤 필요한 것은 정리하여 남기고 그렇지 않은 것은 폐기하는 작업을 진행하려고 합니다. 저는 과연 이 많은 노트를 모두 정리하고 진정한 미니멀리스트에 한 걸음 다가갈 수 있을까요? 그 답은 저도 모르겠습니다만 일단 최선을 다해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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