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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노란 Apr 07. 2024

Q. 주식은 언제 팔아야 할까?

주식 때문에 부부 싸움을 했다.

나와 남편은 소문난 잉꼬 부부다.


남편은 내가 친구들을 만나러 외출하는 날이면 약속 장소가 어디든 그곳까지 함께 움직여주고 내가 친구들을 무사히 만나는 것을 확인해 준다. 그는 친정 근처에서 살기를 원하는 나를 위해 왕복 4시간 거리를 출퇴근하면서도 퇴근 후에는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 주거나 설거지를 도맡아 한다. 그는 내 말에 귀를 기울여 주고, 나를 기꺼이 아껴주며, 내가 무슨 일이든 해낼 수 있음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의 애정을 의심하면 그는 눈물을 보인다.


나는 애교가 많다. 무뚝뚝하고 매사 실용적으로만 생각하는 남편에게 나서서 사랑한다고 고백하며 안아준다. 결혼하고 10년이 넘도록 나는 출근하는 남편에게 입을 맞추고 퇴근하고 돌아오는 남편에게 보고 싶었노라 고백한다. 나는 내가 남편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가 나에게 얼마나 특별한지를 설명하기 위해 내가 가진 학벌, 미학에 대한 보잘 것 없는 지식, 이야기를 재미있게 꾸며내는 재주를 아낌 없이 발휘한다.


"여보는 세상에서 제일 잘 생겼어요. 내 눈에는 저 연예인보다 여보가 훨씬 더 섹시해.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뭐가 중요해요? 나는 저 사람이 아니라 여보랑 결혼했는걸. 내가 내 남편을 세상에서 제일 잘생겼다고 생각해야 내가 세상에서 제일 잘생긴 남자랑 결혼한 여자가 되는 거라고요. 그리고 원래 아름다움이라는 건 주관적인 거예요. 나 못믿어? 나 홍대에서 미술 배운 여자야." 사랑 앞에서는 출산이 임박한 듯 부른 남편의 배와 100kg이 넘는 몸무게도 하찮고 사소한 것이 되어버린다.


당연하게도 우리는 잘 싸우지 않는다. 1년에 한 번이 아니라 몇 년에 한 번 다툴까 말까한 정도다. 하지만 돈 앞에는 장사가 없다. 우리는 돈 문제를 두고 정말 오랜만에 대치했다.




남편 회사는 상장에 성공했다. 이제 매일매일 우리가 가진 재산이 어떻게 변하는지 숫자로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관심이 없어 유심히 보지 않았기 때문에 얼마로 상장했는지는 모른다. 당시 정확한 통장 잔고 역시 기억나지 않는데 3~4억 정도 였던 것 같다. 남은 대출을 갚고 얼마간 돈이 남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 것이 당시의 내가 그 주식에 대해 생각했던 전부였다.


당장 돈이 급한 것도 아니라 그 주식을 팔아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그 돈은 내 게임 속 캐릭터가 가진 게임 머니와 별로 다르지 않았다. 숫자로 찍혀 있되 나와는 별로 관계가 없는 돈 말이다. 꽤 큰 금액이 찍혀 있으니 기분은 좋지만 여전히 언젠가 회사가 망해서 주식이 휴지 조각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생각은 코로나가 터지고 지구가 곧 멸망할 것처럼 호들갑을 떨기 시작하자 더욱 커졌다.


상장 후 얼마간 주가는 횡보했다. 조금 오르는가 싶으면 내리고, 한참 내리는가 싶으면 올랐다.


그러던 주식이 어느 순간 급등하기 시작했다. 주가가 순식간에 몇 배가 되었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그야말로 갑자기 일어난 일이었다.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세력이 붙은 것인가? 우리가 모르는 호재라도 있는 것인가? 얼떨떨한 와중에 내가 제일 먼저 한 생각은 이것이었다. '이 상승세가 끝나기 전에 빨리 팔아야 한다.'


나는 남편에게 달려가 주식을 팔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혹시 더 오를 수도 있으니 일부만 팔고 싶다는 이야기도 했다. 하지만 남편의 반응은 미적지근했다. 척 보기에도 팔고 싶지 않아하는 눈치였다. 자기 회사 주식에 대한 애정이나 자부심인지, 아니면 더 오를 것 같아서 지금 팔기에는 아까운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는 내 제안을 거절했다. 주식은 남편이 회사로부터 받은 것이었기 때문에 남편이 팔기를 거부하면 나로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나는 남편에게 무척이나 서운했다. 당시 나는 취미로 주식을 하고 있었고, 나름대로 꾸준히 수익을 내고 있었다. 작전주에 투자했다가 돈을 잃은 남편보다 내가 주식을 더 잘 안다고 생각했고, 주식을 더 잘하는 내 말을 듣지 않는 남편이 괘씸했다. 또, 남편이 나를 아무리 사랑하며 우리의 재산을 '우리'의 것이라고 설명한다해도 결국 그 재산은 남편의 의견만으로 매도 혹은 보유가 결정된다는 사실에 무력감도 느꼈다. 나는 눈물을 흘렸고, 남편은 결국 내 의견에 따라 주식을 조금 매도했다.


얼마 후 남편이 연말 모임에 친구들을 만나러 다녀왔다. 공교롭게도 그 중에 증권사에서 일하는 친구가 있었고, 남편은 친구에게 조언을 구했다. 가진 주식의 가격이 꽤 많이 올랐다. 이걸 언제쯤 매도하는 게 좋을지 모르겠다. 그러자 증권사에서 일하는 친구가 이런 답을 해 주었다.


A. "와이프가 팔 자고 할 때 팔아."


우문현답이었다. 언제 팔아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것은 더 많은 수익을 내기 위해서였고, 더 많은 수익을 원하는 건 그래야 더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수익을 위해 부부 싸움을 하는 건 수단 때문에 목적을 잃어버리는 행위였다. 남편에게 존중 받지 못한 채 남편이 주식으로 최대한의 수익을 얻어오는 게 과연 나를 행복하게 했을까? 내가 행복하지 않는데 남편이 행복할 수 있었을까? 글쎄, 그 수익이 아주아주 커서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을 만큼이었다면 내가 남편에게 느낀 서운함이나 무력감이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약 서로를 존중하지 못한 채 최대한의 수익 마저 얻지 못했다면?


그렇게 적지 않은 현금과 우리의 매도가 정당했다는 근거를 얻으며 우리의 짧고 어찌보면 사소한 부부 싸움이 막을 내렸다. 재미있는 것은 며칠 뒤 주식이 우리가 매도한 가격의 배가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하하. 설마하니 그게 어깨가 아니라 배꼽이었을 줄이야. 주식 좀 한다는 내 예측은 완전히 틀려버렸다. 민망하지만 이미 팔았는 어쩌겠는가. 손해를 것도 아니었고 덕분에 현금이 생겼으니 좋은 아니겠나? 나는 뻔뻔하게 웃었고 남편은 그런 내가 어이 없다는 듯 웃었다. 배가 시점에 주식을 조금 팔았다.


상황이 변했다. 그림의 떡 같았던 주식이 아니라 현금이 생긴 것이다! 주식 가격은 더 오르지 못하고 내려오기는 했지만(왜 오르는지 몰랐던 것처럼 왜 떨어지는지도 알 수 없었다.) 심지어 아직 팔 수 있는 주식도 남아 있었다! 이제 고생은 끝나고 행복할 일만 남은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사람 인생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는 않은 법. 현금이 생긴 이후 나는 불안하고 우울해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귀한 시간을 내어 글을 읽어주시고, 댓글로 응원해주시고, 라이킷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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