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노란 Apr 25. 2016

미니멀리즘 실천 7: 편지 비우기

20년 치 편지 정리하기

여러분은 편지를 얼마나 보관하고 계시나요? 받은 편지를 다시 읽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단언하건대 20여 년 동안 사람들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단 한 번도 한 번 읽었던 편지를 다시 꺼내어 읽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편지라는 것은 소중한 사람들이 나에게 적어준 것이고, 또 보관하지 않았을 때 사람들이 서운해할 것 같아 쉽게 정리할 수 없는 항목이었습니다.


1차 정리를 마친 편지들의 모습


하지만 미니멀리즘을 실천하기 위해 큰 맘먹고 몽땅 꺼내어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정말 모든 편지들이 나에게 소중한 추억인가? 이 편지 모두가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써준 것인가?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한 장 한 장 편지들을 꺼내어 읽어보았습니다. 편지의 수는 많았지만 진짜 소중한 편지는 몇 통 되지 않았습니다.




일기장을 읽을 때도 느꼈지만 과거의 흔적을 확인한다는 것은 복잡하고 미묘한 마음을 경험하게 해줍니다. 편지 속의 친구들이 저를 너무나 좋아해 주고 있어 행복하기도 하고, 과거의 안 좋은 감정들이 떠올라 긴장되기도 하고, 지금은 연락이 끊긴 사람들에게 좀 더 잘 해주지 못한 마음이 들어 미안하기도 했으니 말입니다.


지금은 연락이 끊긴 친구가 적어준 연하장. 14년 만에 다시 읽어도 참 감사한 편지입니다.


편지는 제가 받은 것뿐만 아니라 남편이 받은 것도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남편 역시 오랜만에 친구들이 보내 준 편지를 읽어보고 추억에 잠기고 또 편지를 보낸 친구에게 다시금 연락을 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옛 편지를 읽어보며 하하하 웃는 남편의 모습이 참 귀여워 보였습니다. 남편 친구들이 보낸 편지를 몰래 읽어보았는데 초등학교 때 받은 편지 인 줄 알고 있었던 것이 고등학교 때 받은 편지라고 해서 무척 놀라웠습니다.


남편이 고등학교 받을 때 받은 편지. 저는 글씨와 내용을 보며 당연히 초등학생이 쓴 편지라고 생각했답니다.




편지를 읽으며 누가 언제 보냈는지 알 수 없는 편지와 나를 불편하게 하는 편지는 1차적으로 정리하여 버렸습니다. 왜 보관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휴지, 포스트 잇에 적힌 메모들을 우선 정리하고 처녀시절 썸타던 남자가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익명의 편지들도 정리했습니다. 욕설이나 저 혹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험담이 적혀 있는 편지도 보관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추억이라면 추억이 될 수 있겠지만 과거의 우울하고 화나던 감정을 미래로 끌고 갈 필요까지는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2차 정리는 스캐너를 이용했습니다. 버리지 않은 편지 중에서 다시 읽어도 저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편지와 의미 있는 편지들을 골라 스캐너로 스캔을 했습니다. 어떤 친구와는 정말 많은 편지를 주고받았음에도 보관할 만한 내용이 없는 경우가 있었지만 별로 친하지는 않은 친구가 짧게 써주었지만 오랜 시간 간직하고 싶은 생각이 들게 만드는 편지도 있었습니다.


우표를 붙여 멀리서 날아온 편지들이 내용이 예쁜 경우가 많았습니다. 또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서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편지들도 좋았습니다. 지금 어떤 노래를 듣고 있는지, 요즘 어떤 책을 읽고 있는지, 어떤 재미있는 일이 있었는지 등의 이야기를 거짓이나 과장 없이 소소하게 적어 놓은 편지들은 다시 읽어도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또 제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관심을 보여주는 편지도 사랑이 뭍어나 좋았고요. 제가 다른 사람들에게 이런 식으로 편지를 쓸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편지들이었습니다. 그렇게 소중한 편지 20여 통은 스캐너로 스캔하여 컴퓨터에 저장해 두고 보고 싶을 때마다 꺼내어 보기로 했습니다.


수능을 앞두고 받았던 편지. 왜 이런 감사한 사람들을 잊고 살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전에 했던 미니멀리즘 관련 실천 활동은 대부분 물건을 덜어내서 공간을 만들고 불필요한 고민을 줄이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이번 편지 정리는 나에게 중요하지 않은 것을 멀리 떠나보내고 중요한 것을 좀 더 가까이하며 살아야 한다는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수많은 편지를 보관하는 과정에서 정말 멋진 편지들이 그렇지 않은 편지들 사이에 파묻혀 저에게 다시 고개를 내밀 기회를 만들지 못하고 오랜 시간이 지나버렸습니다. 이것이 제가 그동안 중요하지 않은 일과 사람들에 얽매여 살다가 중요한 일과 사람들을 떠나보내고 말았다는 것을 간접적으료 표현해 주는 것 같아서 가슴이 아팠습니다.


앞으로 계속 심플한 삶을 유지하면서 제가 지금 알게 된 중요한 것들 그리고 앞으로 알게 될 중요한 것들을 놓치지 않으며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미니멀리즘 실천 6: 설명서 비우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