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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리 Jul 21. 2020

친애하지 않는 너에게

『죽는 건 취미 사는 건 특기』중에서

별안간 너는 눈을 질끈 감는다. 네가 쓰고 싶은 이야기는 사실 이것이 아니다. 아니지만, 그리 다르지도 않다. 쓰고 싶은 이야기들이 산재하지만 각각의 이야기는 각각 그것을 쓸 지경일 때가 되어서야 쓸 수 있다. 이해되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 그러니까


너는 방향을 잃은 채 어떤 글에 대해 쓰겠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저 써내려간다. 앞서 쓴 문장을 두어 번 읽으며 퍼즐을 맞추듯 다음 문장을 이어간다. 맞게 끼운 건지 확신이 서지 않지만 개의치 않는다. 삶처럼.     

약 챙겨 먹는 것을 또 잊어버렸다. 동네의 한 카페에 있는 너는 그것에 대해 쓰며 집에 잠깐 다녀올까 생각하지만 이내 생각을 달리한다. 이런 상태일 때만 흘러들어오는 언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대체로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달리 말하면 볼품없는 삶에 쓸데없이 진지해지려는 짓거리에 대해서. 자신을 필요 이상으로 미워하는 건 되려 나르시시즘에 가까울 터다. 자아가 비대한 인간인가, 너는 자문하며 담배를 피운다. 진중할지언정 진지하지는 말자 다짐했건만 아직도 삶에 너무도 진지하다. 죽은 언어들 속을 유영할 때에만 행복을 느끼는 것이 정상인가. 답을 알고도 묻는 것이 일종의 자해임을 너는 이미 잘 알고 있다.     


짧다면 짧은 세월 속에서 너는 계속해서 네가 되어왔다. 너는 그 사실에 더 이상 감흥이 없다. 감격하는 일 따위 벌어지지 않는다. 현상은 이제 현상으로 그칠 뿐이다.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는 일과 언젠가 교통사고를 당해 움직이지 않던 다리를 신기해하던 일이, 언제부턴가 너에게 있어서 크게 다른 일로 느껴지지 않는다. 사건이라는 것에 흥미를 잃었다. 우연과 예정은 그러한 생각 속에서 자아를 잃고 바스라져 뒤섞인다. 현상과 현상의 이어짐이 만들어내는 또, 현상. 하지만 이야기를 계속하려면 구질구질한 현상을 빼놓을 수가 없다. 너는 지리멸렬한 생을 되짚어본다. 그 안에서 의미를 발견하려 애쓴다. 그것이 환상에 불과할지라도, 그리고 그 가능성을 모른 척하면서.


어떤 돼먹잖은 이야기라도 그 안에 환상이 섞여 있어야 한다는 걸 너는 최근에 들어서야 깨달았다. 환상이라는 사실조차 환상이어도 상관이 없는. 그리고 너는 그러한 이야기에 강한 반감을 품고 있다. 어떻게든 교훈을 집어넣은 악취 나는 누군가의 작품을 상기한다. 교훈과 환상의 차이에 대해 생각하다가 부질없음을 깨닫는다. 인과를 환상으로 엮으려는 짓을 그만두어야 한다. 너는 유희를 온전히 즐기지 못한다. 아니, 너에게 유희란 눈물이고 그리움이자 분노이며 온전치 않은 자신을 결코 사랑하지 않는 일. 환상으로 가득한 건 웃기게도 타인이 아닌 너 자신이다.     


살기 위해 찢어 떼어낸 관계들은 지난날, 아니 지금까지도 너의 모든 것이다. 언제까지 함께이고 싶어 떠난 몇 년의 세월은 너의 삶을 완전히 뒤바꾸어 놓았다. 돌아가지 못할 고향. 도달할 그곳이 사람이어서는 안 된다고 다짐하는 그 순간에도 네 눈동자 속은 사람으로 가득했다. 함께이기 위해서 너는 너를 필사적으로 단련했다. 이대로여서는 멀어지고 말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걸음을 맞추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너는 원하는 결실을 끝끝내 맺지 못했다. 관계의 유통기한을 늘리려는 노력은 언제나 일방적이었고, 그래도 괜찮다는 건 스스로를 계속 걷게 하기 위한 암시에 불과했다. 관계가 시절 속에서 자연적으로 소멸하는 특질이 있음을 너무 늦게 깨달은 너는 비탄에 젖을 시기도 놓쳐버렸다.     


어디든지 갈 수 있는 문장들이 산재함에도 나침반을 놓지 않는 건 나를 위함이 아니다. 갈 곳 없는 너는 어디를 가도 더 이상 길을 잃지 않는다. 말했듯이, 인과는 더 이상 네 판단에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그렇기에 모든 인과는 우연, 또 모든 우연은 인과가 되어버린다. 너는 그저 걷는다. 예정되어 있거나 또 전혀 그렇지 않은 모든 순간을 딛는다.

너는 때로 나침반을 주저 없이 내던졌다가 그것을 줍기를 반복한다. 나를 전혀 알지 못하는, 나 또한 그러한, 사랑하는 이를 생각하면서. 너는     

이미 길을 잃은 건지도 모른다. 문장의 뒤에 문장을 잇는다. 말했듯이, 삶처럼. 빌어먹을 세상과 도륙 내고 싶은 소중함이 아니면 대체 무엇으로 살겠어, 너는 중얼거리며 웃는다. 작게 말했기에 아무도 듣지 못했고 너는 그럴 줄 알았기에 대수롭지 않다. 오만으로 가득찼다는 걸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마음의 결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음악을 얼마 전에 발견한 너는 내내 그것을 듣는다. 아껴 들으려 하지 않는다. 듣지 않게 되는 날이 올지라도 그 날엔 또 다른 것으로 연명하고 있을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소중함은 닳고 닳도록 소모해야 한다. 그럴 수 있을 때 그래야 한다. 너는 수차례 실패하면서 그 사실을 배웠다. 몸이 되어버린 깨달음에 대해서만큼은 어찌할 바 없이 믿어야 한다. 분하게도 그렇다.

이 노래는 마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모든 곡이 그러한 생각의 변주일 뿐이고, 너는 그래서 어찌할 바 없이 그것을 듣는다. 일상 속에서 중얼거리지 못하는 말을 늘어놓는. 간단한 기타 코드와, 덤덤한 목소리에서 너는 비명을 듣는다. 언제부턴가 마음보다도 이야기보다도 비명이 담긴 것에 몰두하게 되었다. 눈물, 그리움, 외로움.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매체에서 다루는 그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심지어 이제는 과시가 되어버리기도 하는 그따위 것들이 종종 너의 전부다.     


썩어가는 심정은 때로 황홀하다. 썩어간다는 건 알고 보니 그저 썩어간다는 것이 아니었고, 그것을 알고 나니 너는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모든 썩어가는 것에 대하여 썩어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세 시 삼십오 분이 세 시 삼십육 분으로 바뀌는 것에 대해 이해하고부터 세상이 만만해졌다. 괴로움에 대하여. 그것의 이유에 대해서는 모르지만 너는 받아들인다. 그것의 이유에 대해서는 모르지만 너는 받아들인다. 긍정과 체념이 한데 뒤엉켜 악취 나는 관조가 되었음을 인정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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