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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리 Sep 10. 2020

0과 1

말을 삼키고. 심정은 쓰고. 입맛은 다시고. 아프면 쉬어야지. 너는 자꾸 무언가를 먹으라고 해. 그래서 나는 또 마시고. 게워내고. 목구멍의 일은 그러니까 너무 많아. 지켜지지 않을 약속을 기도라 발음하기로 해, 말했었는데. 기도가 막혀 사람이 죽었다. 바람은 여전하다. 가을은 왔다. 비는 고개를 저으며 온다.


움푹 파인 살점이 생경해 만지작댄다. 어디까지가 내 몸인가. 얼마쯤 머무르고 떠나야

떨어져 나갔다고 할 수 있을까. 왼쪽 어깨에 점이 있다고 누군가 말했고. 나는 거울을 돌아보며 그것을 발견한 적이 없다. 거짓말이었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원래 없다가 생겼을지도 모르고, 잘못 본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다른 곳으로 옮겨갔을지도 모른다. 누구도 알지 못하고 궁금해하지도 않을 이야기인데 너에겐 우주가 또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그곳도 알고 보면 사실 0과 1로 이루어져 있대. 어떤 1은 사실 어느 점이야. 어느 미생물의 커다란 방이야.


어제는 꽤 많이 웃었던 거 같은데

내 이름을 발음했던 사람의 부고를 들은 날에도 그랬는데


낮의 대화, 속의 낱말, 앞에는 모르는 이의 낯

울다가 낫을 든 사람과 웃으며 납을 삼킨 사람

인스턴트 연명

명분을 잃어 내려둔 말

질문은 또 고개를 흔들며 내려


언젠가 기쁘게 죽을 수 있기를 바란다

이야기하며 나는 이 말이 너를 살리길 바랐다


날짜는 맨 위에 적어두고서 마음이 머무는 곳 어디든 적었다

그럼에도 적어야 했다,로 끝나는 편지를 읽었다

추억을 지키는 데에 너무 많은 품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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