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계절이 찾아올 무렵, 숨죽였던 감각이 하나둘 되살아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모든 사건에 몸져눕는 일이 조금이나마 줄어 있었고, 마음에 있어 스스로에게 준 적 없던 관대함을 베풀어보기도 하면서. 알고 보니 사소한 일상 앞에서, 두려움과 기대가 적당히 섞인 상태가 싫지 않은 기분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사양 않고 순간을 누리고 싶었다. 괜찮은 날들이 이렇게 찾아오기도 하는데 나는 매번 감당할 수 없을 지경이 될 때만 일기를 써 왔구나. 그렇지 않으면 쓸 이유가 없다는 말을 반복하면서. 이래서는 언제까지고 어두운 사람으로 기억될 수밖에 없다. 이제야 그 사실을 알아. 그래서 웃으며 기쁨을 기록해 보기로 했었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모조리 잊고 잔뜩 엎어진 나에게 이날을 들이밀어야지. 괜찮아질 수 없다고 생각한 날이 어느새 지나갔다는 사실에 대해, 그런 일이 일어난 적 있고, 이번에도 분명 그럴 거라고.
기쁘다고 쓰기 위해서는 기쁨이 나에게 온 이유를 알아야 한다. 당연하게 기뻤다고 쓰고 기분 좋게 덮을 수는 없다. 그것만큼은 불가능하다. 기꺼이 그러던 날이 있었지만, 삶을 보는 눈이 완전히 뒤집히는 순간을 만난 사람들은 두 번 다시 그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들은 비로소 생 전반에 걸친 과제를 알아차린다. 결코 당연해질 수 없는 의문의 바다에 잠겨서, 어떻게 다시 삶으로 걸어 들어갈지, 기어서라도 그렇게 할 수가 있는 건지, 입장과 실마리를 찾아 평생을 헤매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갈수록 알 수가 없다. 알수록 길을 잃어버리는 날이 온다. 언제고 유효할 것 같던 확신이 상하고, 믿어서가 아니라 믿고 싶어 지켜온 믿음이 안쪽에서부터 부서질 때, 시간축은 세트장처럼 뒤로 넘어간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고개를 맞대고 순한 눈으로 나 혹은 당신을 바라볼 때, 어찌할 바 없이 깨닫고 만다. 그것들이 사실은 한 번도 우리를 노려본 적 없다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젖은 여전한 문장들. 물기 없는 행복의 존재를 상상할 수 없다. 결핍과 무관하게 눈물겨울 수가 있을까. 살아 있기 위해 살아간다니. 머물기 위해 떠난다니. 기억하기 위해 잊는다니. 아끼기에 덮는다니? 말을 멈추고 고개를 숙였던 사람의 눈이 서서히 다시 열린다. 어쨌든, 이라는 말을 발화하기 직전에 악다구니 같은 단호함이 있고, 그 앞의 장면. 우리는 그것에서 눈을 돌릴 수 없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