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일이 있어 늘어져 있던 날이었다. 지인이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한눈에 봐도 암울해 보이는 나를 보곤, 흔하디 흔하게 ‘무슨 일이냐’는 질문도 하지 않았고 ‘괜찮냐’고 물어보지도 않았다. 그는 그저 살포시 다가와 인사 한마디와 드라이플라워로 장식된 작은 카드 편지를 나에게 주고는 자리를 떠났다. 그가 자리를 뜨자마자 성격 급한 나는 무슨 내용일까 싶어 편지를 열었다. 편지에는 아무 내용도 적혀 있지 않았다. 어떠한 위로의 말도 교훈이나 명언도 적혀있지 않은 빈 카드였다.
빈 카드를 왜 나에게 준 것일까. 의도를 알 수 없었으나 카드에 달린 드라이플라워가 예뻐서 기분이 잠시 나아졌다, 저기압인 나에게 그냥 꽃 비슷한 것을 준 것이라 생각하고 기운을 차렸다. 빈 카드였지만 왠지 모르게 기운 내라고 하는 것 같았다. 문드러진 마음에 한참 동안 꽃 한 송이 놓인 기분이었고 그게 내내 고마웠다.
궁금한 것은 못 참는 나는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그 카드에 대한 의중이 궁금했고, 그때의 빈 카드에서 받은 위로에 대한 고마움도 전하고 싶었다. 몇 해가 지나고 나는 그에게 물어보았다.
“그때 나에게 와서 카드를 전해줘서 고마웠어요. 왠지 큰 위로를 받았고 내내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었어요.”
고맙다는 인사가 너무 뜬금없을 만큼 시간이 지난 후였지만, 그는 내 감사인사를 선뜻 받아주었다. 그 후 왜 빈 카드를 나에게 준 것인지 물어보았다. 무슨 일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말을 해야 위로가 될지 모르겠다 생각했다고 한다.
“나는 네가 스스로 일어날 거라고 믿었어.”
나는 나를 믿어주고 아끼는 사람이 아니다. 늘 채찍질하고 때론 자기 파괴적인 성향까지 있는 사람이다. 자신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 스스로를 믿어줄 리 만무하고 자신에 대한 믿음이나 확신 따위는 없었다. 그런데 그런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이었던 것이다.
몇 년간 빈 편지라고 생각했던 그 카드에는 글자로는 담기 힘들 만큼의 아주 큰 위로와 믿음이 담겨 있었다. 그 내용을 나도 모르게 읽어낸 듯, 나는 카드를 받고 기운을 차린 것이었다. 믿음은 그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믿어준 만큼 나는 성장해 있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을 믿어줄 수 없을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일단 나를 믿어주는 사람을 믿어보자. 분명 그들이 나에게서 본 무언가로 나를 믿어주는 것이고, 그 믿음 또한 내가 만들어 낸 것이다. 자신을 믿기 두려울 때 살포시 나를 믿어주는 이들의 믿음에 기대어도 좋다. 그 힘으로 일어나 나아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