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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의 담소 Oct 20. 2023

그래서 과제가 뭐라고?

전공이 영어영문학과지만, 영어를 못합니다.

 원래 배우고 싶은 것이 없다면, 나는 대학 진학을 포기하려고 했다. 때는 고등학교 2학년, 영어 선생님이 수업에서 One Direction이라는 그룹의 뮤직비디오를 틀어주셨다. 나는 그들의 미소와 눈빛, 목소리에 홀려 순식간에 팬이 되었다. 좋아하는 가수가 한국어가 아닌 영어로 말하며, 싸이월드가 아닌 트위터를 한다. 나는 어떻게든 그들이 뭐라고 말하는지 알아야겠었다. 그렇게 영어 공부를 하려고, 영어 선생님에게 외국 드라마를 추천해 달라고 했다. 미디어를 보다 보면 영어를 빨리 익힐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그렇게 추천받은 미국 드라마 'Glee'를 보면서 점차 영어를 잘하고 싶어졌다.


 영어를 잘하면 얻는 이득은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영어를 배우고 싶었던 이유는 세 가지였다.

첫째, 많은 국가에서 영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해외여행 시 용이하다.

둘째, 무언가에 대해 다양한 지식을 원할 때, 해외 자료들과 책으로 다양한 정보를 습득할 수 있다.

셋째, 외국 친구를 사귈 수 있다.


 그래서 대학교 전공으로 영어영문학과를 선택하기로 했다. 누군가는 "문과를 전공으로? 문과는 전공으로 가는 거 아니야."라며 취업이 힘들다는 이유로 만류하였지만, 학문을 배우기 위해 대학에 가는 나의 목표에는 적합했다. "세상에 전공 따라 취업하는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 그냥 배우고 싶은 거 배울래."


 그렇게 대학교 입학 후 마주한 현실은 가혹했다. 중어중문학과나 일어일문학과는 새내기 때, '성조'나 '히라가나'부터 다시 배운다던데, 웬걸 영어영문학과는 대뜸 영어로 된 시와 소설을 배웠다 영. 알. 못(영어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던 나에게는 청천벽력이었다. 물론, 문법을 알려주는 강의도 있었다. 문제는 그 강의의 교수님이 원어민이라는 것. 그때부터 영. 알. 못의 수난 시대는 시작되었다.


 원어민 교수님이 Homework(숙제)라고 말하는 건 들렸지만, 명확하게 과제가 뭔지 몰랐다.

"뭐야? 과제 있어?"

"지금 말해주시잖아"

"그건 아는데,, 과제가 뭔데??"


 친절한 동기들은 나에게 과제를 알려주었지만, 매 강의가 끝날 때마다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과제보다도 더 큰 문제가 있다면 시험이었다. 영어영문학과는 '문학과'답게 시와 소설들을 배운다. 시험은 당연히 영어로 나오고 답도 영어로 써야 했다. 수업은 열심히 필기하고 복습하면, 쉽진 않아도 따라갈 수는 있었다. 시험은 그와 전혀 다른 문제다. 만약 주관식 시험이라면, 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그 생각을 영어로 옮겨야 하기 때문이다. 영어 작문을 잘하는 친구들은 문제를 보고 바로 쓸 수 있지만, 나는 예상 질문을 죄다 적어 보고, 그에 대한 내 생각을 한국어로 적은 후, 마지막으로 영어로 옮겨 단 하나의 단어도 빠짐없이 외웠어야 했다. 열심히 노력했지만, 성적은 당연히 남들보다 좋을 수 없었다. 내가 노력할 때 남들도 노력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는 내 전공이 좋았다. 책이라면 만화책도 안 읽었던 내가 대학생이 되면서 시를 사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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