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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의 담소 Oct 22. 2023

교수님과 각서를 쓰다

영. 알. 못의 영어 면접

 교환학생을 가기 위해, 각서를 쓴 대학생이 또 있을까 싶다. ‘못 먹어도 Go!’를 외치고 지원을 넣었던 서류는 합격을 받았다. 합격 문자를 받고 얼마나 신났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서류 합격 후 영어 면접이 남아있었다. 영어 시험의 주관식 답도 미리 적어서 외우는 사람이 과연 유창한 답이 가능했을까? 물론 간단한 말은 가능하겠지만, 영어 면접에서 원하는 수준은 그 정도가 아닐 것이다. 방도가 없었다. 늘 하던 대로, 예상 질문을 죄다 뽑아보고 답변을 미리 적었다.


 지원하는 학교 국가를 영국에서 미국으로, 1 지망을 바꾼 상태였다. 가고자 하는 교환학교를 고를 때는 본디 그 학교에 대해 알아보고 정해야 한다. 그러나 어디든 합격이 목표인 나에겐, 학교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미국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단지 영국은 인기가 많은 지원지였고, 미국은 그렇지 않았다. 그냥 공고문에 있는 학교 이름 중 가장 잘 읽히고 끌리는 걸 하나 뽑았다. 그리고 이 선택은 큰 결과를 가지고 왔다.


 면접 결과는 각서였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영어 면접은 예상 질문을 죄다 벗어났다. 나는 동문서답을 계속했다. 국제교류과 담당자분께서 오죽 답답하셨는지, 한국어로 다시 질문하셨다.

“아니 아니, 그게 아니고. 학비 지원부터 들어가는 비용이 상당히 큰데, 부모님께서 지원이 가능한가 하고 물었어요.”

“네, 저희 부모님께선 교육에 한해서는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주십니다.”


일주일 정도가 지났을까? 합격문자와 함께 전화가 걸려왔다.


“합격을 시키긴 했는데, 보내는 것이 맞을까 상당히 고민했습니다. 영국은 같이 보낼 수 있는 합격자가 있으나, 미국은 혼자 가야 해요. 그런데 지원 넣으신 미국 주립대와 자매결연 후 첫 학기입니다. 저희 입장으론 누구라도 보내야 해요. 그래서 전공 교수님과 같이 상의해 본 결과, 미국에 보내기로 결정했어요. 본인의 다짐을 각서로 써서 교수님께 서명받아오세요. 각서의 양식은 따로 없습니다.”


 얼마나 내가 못믿어웠으면 각서를 쓰라고 했을까.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환호성을 질렀다. 1년간의 노력으로 일단 미국에 가지 않는가. 뭐라고 쓸지 고민하다가 각오, 계획, 목표를 상세히 적었다. 서약서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실제 교수님께 서명받은 서약서

 서약서에 교수님 서명을 받고 복사를 했다. 한 장은 제출하고, 한 장은 코팅을 해서 미국에 갈 때 가지고 갔다. 각오를 스스로도 잊지 않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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