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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의 담소 Oct 22. 2023

미국대사관 영사를 웃게 만들다.

배우면 어디든 써먹는다.

 교환학생 합격 후 넘어야 하는 산은 계속 있다. 미국 대사관에서 학생비자(F1)를 받아야 하고, 미국 대학교 홈페이지에서 숙소를 선택해야 한다. 마지막으론 입국 심사를 통과해야 무사히 미국 도착이다. 미국 대사관에서 비자를 거절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인터뷰 준비를 더 철저하게 했다. 준비기간이 넉넉하지 않았기 때문에 단번에 통과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미국 대사관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비자를 받기 위해 줄 서 있었다. 인터뷰 줄이 줄어들수록 긴장은 높아졌다. 비자를 거절당하면 초록색, 핑크색, 주황색 등 색이 있는 종이를 받는다. 유독 한 창구에서 형형색색의 종이를 주고 있었다. 국가 안보를 위한 비자심사이니 만큼, 영사들은 무표정으로 인터뷰를 한다. 때론 압박면접도 한다고 했다. '제발 저기만 걸리지 말아라.' 그 창구에 걸린다면 심장이 멎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의 순서에 맞추어, 그 창구에 내 대기번호가 떴다.


"미국에 왜 가죠?"

"공부를 하기 위해서요."

"전공이 뭔가요?"

"영어영문학과입니다."


 전체적으로 질문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짧은 영어로도 충분히 대화가 가능했다. "꿈은 뭐죠?" 그때 문제가 발생했다. 그 당시 나의 꿈은 배우였다. 대외적으론, 통역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비자 심사 때도 당연히 통역사라고 말할 예정이었다. "translator" 정확하게 말하자면, 통역을 하는 사람은 Interpreter라고 한다. translator는 번역가다. 그리고 영사는 번역가라는 단어만 말하는 내 말을 오해했다. 인터뷰에서 어려운 대화가 오가면 통역사를 요청할 수 있는데, 공부를 하러 가겠다는 학생이 간단한 질문에 통역을 요청한 것처럼 보인 것이다.


"꿈이 뭐냐는 간단한 질문에 통역을 요청한다고요? 그러면서 미국 가서 공부를 하겠다는 거예요?"

"???"

"꿈이 뭔지 답해요."

I wanna be a만 붙여도 이해했을 말이지만, 당황한 난 같은 말을 반복했다.

"translator."

그때 영사가 자신이 오해를 한 것을 깨닫고 고요한 대사관에 웃음을 뿜어냈다.

"아하하하하. 나는 통역사를 요청한 줄 알았어요. 미안해요. 제가 오해했네요."

그 이후부터 분위기는 밝아졌다.


"좋아하는 책 있나요?"

그때의 난 책이라면 만화책도 질색하던 사람이다. 좋아하는 책이 있다고 한들, 한국어 책 제목을 영어로 말해야 했다. 1초 동안 많은 생각이 휙휙 지나갔고, 잠자던 뇌가 임기응변을 발휘했다. 전공에서 배운 책 제목이 떠오른 것이다.

"Great Expectations.(위대한 유산이요)"

"와 정말 좋은 작품이죠. 미국에서 공부 열심히 하길 바라요"


그렇게 비자를 통과받았다. 사실 '위대한 유산'을 배운 강의에서 좋은 성적을 받지는 못했지만, 비자 질문에 써먹을 줄이야. 역시 배우면 어디에든 써먹는다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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