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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의 담소 Oct 22. 2023

핸드폰 없이 타지에서의 3주 보내기

영어를 잘하지도 못하는데 폰까지 사용을 할 수 없다고?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 사람도 해외여행을 잘 다녀올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를 뽑는다면, 단연 스마트폰의 번역기 덕분이지 싶다. 나 또한 대화 중 막히는 단어가 들리면 번역기를 사용했다. 그런 나에게 닥친 시련의 원인은 술이었다.


 때는 친구들과 펍에 가서 술을 마시기로 했던 날이다. 미국에 도착 후 처음으로 펍에 가는 것이어서 신이 나있었다. 인싸 중의 인싸인 미국인 친구가 함께 간 덕에 다양한 친구들을 소개받았다. 사실 너무 많은 친구들을 소개받아서 누가 누구인지조차 인지 못하고 있었다. 그 친구들이 한 명씩 웰컴 주라면서 술을 한 잔씩 주고 갔다. 컵의 크기는 정수기의 작은 원형 종이컵 정도였다. 스무 살 초의 대학생에게는 술이라고 해봐야 소주와 맥주였기 때문에, 쎈 술이 어느 정도로 독한지 무지했다. 상대방이 주는 음식을 거부하면 예의에 어긋난다. 게다가 공짜 술인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 주는 대로 연달아 마셨더니 취해버렸다. 나중에 듣기론 그 술들의 도수가 대략 40도, 50도 정도였다고 한다. 고작 세잔에 훅 가버린 것이다.


 비상이었다. 몸을 가누기 힘들었고 속도 울렁거렸다. 화장실을 가려는데 모르는 미국인 친구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영어도 못하는데 취하기까지 한 나에게는 외국어가 아닌 외계어로 들렸다. 뭐라고 말하는 그 친구에게 나는 말했다. "I'm drunk and I can't understand you're saying" 취해서 뭐라고 하는지 못 알아듣겠다는 말에도 부축을 도와주며 자꾸 말을 걸었다. 참다못해 한국어로 "아잇! 증말 화장실 급하다고, 뭐라는지 모르겠으니까 비켜 쫌"이라고 말했으나 대화가 되지 않았다. 나중에 같이 왔던 미국 친구 2명이 나를 데려가겠다 말하며 꺼내주었다. 일단 급했던 화장실에 갔다. 그때 핸드폰을 실수로 바닥에 떨어뜨리며 액정이 깨져버렸다. 그 정도였으면 좋았겠지만, 핸드폰에 대한 기억은 여기서 끊겼다. 그날 밤, 차를 타고 기숙사가 아닌 친구의 집 침대에 눕혀져 재워졌다.

   

 다음 날, 친구에게 미안함과 감사함을 표하고 핸드폰의 행방부터 찾았다. 친구가 말하길 쌀통에 내 핸드폰이 있다는 것이다. ‘에? 웬 쌀통?’하고 열었더니, 진짜 쌀통에 핸드폰이 고이 묻혀있었다. 이유를 물었다. 물이 들어가서 고장이 났는데, 쌀이 습기를 흡수하면 혹시 작동될까 봐서 넣었다고 한다. 전날에 차에 타자 폰이 없어졌다고 말하니 , 친구들이 폰을 찾으러 갔다고 한다. 그 누구도 어떻게 폰이 거기 있었는지 모르지만, 핸드폰은 펍 외부 흙더미에 떨어져 있었다. 심지어 누가 그 위에 노상방뇨를 해놓은 상태라는 것이다. 그렇게 핸드폰은 사망한 상태였다. 술은 멀리할수록 좋다는 것이 건강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할 수 있는 실력이 아니었다. 친구들, 교수님과의 연락, 튜터와의 일정 조율 문제 등. 핸드폰이 필요한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다. 한국이었다면, 문제는 간단하게 해결되었을지도 모른다. 일단 사용하는 핸드폰의 미국지사에 전화를 해서 수리 가능 여부를 물어보아야 했다. 영어 스피킹의 최고는 전화 영어다. 얼굴을 맞대고 스피킹을 한다면, 우리는 제2의 언어인 바디랭귀지를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전화는 하고자 하는 말을 목소리로만 전해야 한다. 대략 난감이었다. 미국지사에 전화를 하기엔 또 다른 문제가 있었는데, 핸드폰이 고장 나서 전화를 할 수 있는 방도가 없었다. 다행히 한국 유학생 중 한 오빠가 전화도 직접 걸어준다며 도와주었다. 미국지사의 답은 안타깝게도 같은 기종이 없어, 수리가 불가하다는 것이었다.


 다음 시도는 핸드폰을 사는 것이었다. 한국에 쓰리 스타가 있다면 미국엔 사과가 있다. 그러나 당시 사과 폰을 갑자기 살만한 여유자금은 없었다. 다른 핸드폰을 사기 위해, 미국 친구의 도움으로 전자기기 가게도 갔다. 내가 알고 있는 핸드폰은 삼 X, 애 X, 엘 X가 전부인데, 꽤나 다양한 핸드폰이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급해도 거기에 있는 핸드폰들을 사고 싶지는 않았다. 마지막 방법은 배터리를 제외한 같은 기종의 핸드폰 본체만을 택배로 받는 방법이었다.(택배에 배터리는 보낼 수 없기 때문에 본체만 보내야 했다.) 혹여 고칠 수 있을까 봐서 고장 난 핸드폰 본체도 같이 보냈으나 한국에서도 고칠 수 없었다.

   

 그렇게 핸드폰 없는 일상이 시작되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노트북이 있었다. 노트북은 나에게 아주 크고, 무겁고, 번거로운 핸드폰이 되어주었다. 길 가다가 친구에게 약속 장소를 물어봐야 하는 상황이 오면, 대뜸 길바닥에서 노트북으로 메시지를 보내곤 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중국 친구는 깔깔 웃으면서 '술 좀 작작 마시라'고 구박을 했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핸드폰 없는 일상은 차츰 적응이 되었다. 번역기에 의존도도 점차 떨어져 갔다. 핸드폰이 고장 난 후, 한국에 택배를 보내고, 미국으로 택배가 다시 오기까지. 대략 3주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엄마는 같은 기종의 새 핸드폰 본체와 함께, 한국 음식들 그리고 편지 한 통을 보냈다. 미국에서 잘 지내는 모습이 기특하다면서도, 술은 조심히 마시라는 당부가 있었다. 그렇게 핸드폰 없는 삶이 끝나고, 미국에서 술로 실수하는 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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