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해지지 않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기

by 연시홍

운전을 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다. 운전대만 잡으면 어깨가 움츠러들고, 끼어들 타이밍을 엿보느라 온 신경이 곤두선다. 초행길이라도 되는 날엔, 윤이조차 (감히) 말을 걸지 않는다. 내비게이션에서 말해주는 ‘300m 앞’이 여긴 지, 다음 교차로인지 도통 모르겠다.


비단 운전뿐 아니라 요리나 청소 같은 일상적인 일조차도 서툴고 어색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집밥을 챙겨 먹는 편이라 채소 손질도 익숙해야 할 것 같은데, 막상 칼을 들면 지켜보던 이가 불안한 듯 칼을 빼앗아간다. 어느 순간 나는 삐걱거리는 양철 로봇이 되어 있다.

“잘 봐. 언니들 싸움이다.”

그렇게 호기롭게 외치는 스우파 언니들처럼(멋있으면 언니니까) 되려면, 나는 얼마나 더 지나야 할까.


진은영 시인의 산문집 ‘나는 세계와 맞지 않지만’에서 이 문장을 발견했을 때, 오랫동안 찾아왔던 적확한 말을 찾은 기분이었다.


“세계는 내 것이다.

그러나 나는 세계에 꼭 들어맞지 않는다.”


이 세계는 나의 것이지만, 이 세계에서 나에게 꼭 맞는 내 자리는 어디일까. 아무리 반복해도 낯선 순간이 있다. 손이 야무지고, 몸놀림이 자연스러운 사람들은 나의 오랜 동경의 대상이다. 뭘 해도 마치 그 자리에서 원래 그것을 오래 해왔던 듯 자신만만한 사람들.


차분한 성격 덕분에 흔들리는 내면과 미숙함이 외부로 티가 덜 나서, 나를 적당히 아는 사람들은 이런 나의 어색함을 잘 알지 못한다. 그러다 점점 깊이 알아갈수록, 의외로 허당이라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그래서인지 내 주변에는 언니 같은 친구들이 많다. 나보다 실제 나이가 많고 적고를 떠나서, 내가 채워주기보단 어쩐지 채움을 받게 되는 존재들. 야무지게 자기 몫의 일을 해치우는 사람들.


한 회사에서 같은 직무로 1n 년을 보냈다고 하면 한 가지 일만 그렇게 오래 하면 지겹지 않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그럴 때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일하기 싫은 순간은 많았지만 그 이유가 지겨워서였던 적은 없었다.

뭐든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걸리는 나는 10년을 넘게 해도 아직 내가 하는 일에서 능수능란하다는 느낌을 받아본 적이 없다. 이 정도면 다 내 손바닥 안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다가도, 어느 순간 갑자기 하나도 모르겠는 느낌이다. 같은 단어를 입에서 오래 굴리다 보면, 갑자기 그 단어의 발음이 어색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언제쯤 이 일을 잘할 수 있게 될까? 생각하면서 오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아직 일에서도 온전히 잡았다는 느낌이 없는데, 거기에 또 새로운 역할이 추가된 것이 바로 “윤이어머님”이다. 처음 “어머님”이라는 단어가 나를 칭하는 말이라는 걸 깨달았을 때, 몸 둘 바를 모르겠던 기분을 잊지 못한다. 이렇게 부족한 내가, 누군가의 엄마가 될 수 있을까? 한 때는 어설프게 아이를 안아 올렸는데 이제는 좀 자연스럽나 싶다가도, 잠시 방심한 사이 윤이의 준비물을 놓치고, 엘리베이터에서 윤이 입가에 하얗게 말라붙은 치약 자국을 급히 닦아낸다. 양 볼이 반짝반짝하게 로션을 바른 다른 집 아이의 얼굴을 보면 괜히 민망하다. 10년이 더 지나면 이제 육아를 능숙하게 해낸다는 느낌이 올까? 굼뜬 내 속도로 보면 그런 날이 오기 전에 윤이가 다 커버릴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윤이어머님’이 되어 좋은 점은, 나의 부족함에도 나에게 계속 기회를 주는 윤이가 있다는 것이다. 이 세계에 맞지 않는 나에게, 윤이는 세상 나밖에 없다는 듯 엄마라는 이름을 계속 붙여준다. 나의 부족함에는 아량곳 없이 불러주는 ‘엄마, 엄마‘하는 윤이의 목소리는 부유하는 내 마음을 고정시킨다.


아이는 다섯 살 때까지 평생 할 효도를 다한다는 말을 귀여움에 대한 찬양으로 들었는데, 그건 어쩌면 더 근원적인 의미가 담긴 통찰이 아닐까 싶다. 처음으로 온전히 내가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는 기분. 이리저리 휩쓸려 치이다가 돌아올 자리가 생긴 기분.


일을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한 것 같은 찝찝한 기분이 마음에 가득 차 있다가도, 윤이의 쫑알거리는 소리에 나의 부족함을 살짝 내려놓게 된다. 서툴고 어설프지만 내 손을 꼭 잡아주는 윤이 덕분에 최소한 나는 지금,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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