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이가 아직 태어나기 전의 이야기다. 뱃속에 있는 아기의 성별이 궁금해 참지 못하고 예정된 진료 일정보다 빠르게 진료를 보러 갔다. 아들 딸 구별 말고 하나만 낳아서 잘 기르자고 생각했지만, 나는 내심 딸을 낳을 것 같다고 느꼈다. 같이 팔짱 끼고 쇼핑도 가고, 카페 가서 브런치도 먹을 것이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아들이면 어떨까 상상해 보았다. 엄마한테 살가운 내 남동생이나 남편 같은 아들이면 그것도 좋을 것 같긴 했다. 초음파를 보던 의사 선생님이 넌지시 말했다.
“핑크색 옷 준비하셔야겠어요.”
딸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진짜 딸이라 정말 기쁜 마음과 동시에, 묘한 아쉬움이 들었다. 이건 무슨 기분일까? 크게 기대한 적은 없지만 만난 적 없고 앞으로 만날 일 없는 나의 상상 속 아들은 이제 확실하게 없다. 미정의 세계는 그렇게 신비롭다. 무언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는 여러 가능의 세계를 동시에 품을 수 있다.
백만 원을 삼백, 사백만 원 혹은 그 이상으로도 만들 수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미정의 세계에서는 가능하다. 나에게 갑자기 백만 원이 생긴다면? 그 돈으로 여행을 갈 수도 있고, 뭔가 배울 수도 있고, 예쁜 가방을 살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지만, 가능의 세계에서 백만 원은 어느 날은 항공권이 되었다가 다음 날은 학원 등록증이 되기도 하고, 가방이 되기도 한다. 백만 원은 이 모든 가능성을 품고 있다. 그러다 카드를 긋는 순간, 가능성이 물질로 등가 교환되어 버려 제 자리로 돌아온다. 그저 백만 원어치의 무언가가 되는 것이다. 막상 결제하고 나니 생각보다 그렇게 기쁘지 않았던 경험은 다들 한 번쯤 해보았을 것이다. 여행도 가기 전이 가장 즐거운 것처럼 말이다. 미확정이 확정으로 변하는 순간, 가능했을 여러 세계는 스러지고 하나의 선명한 현실이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도토리 안에 참나무의 가능태가 들어있다고 했다. 기둥이 굵고 잎이 풍성한 참나무가 될지, 힘없이 가느다란 참나무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아직 참나무가 되지 않았기에, 도토리는 모든 가능성을 품고 있다. 작은 몸에 수백 가지의 넓은 가능의 세계를 품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 정해지지 않아서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것도 되지 않았기에 뭐든 될 수 있다.
점점 나이가 먹을수록, 정해지지 않는 것보다 정해진 것이 많아지는 느낌이다. 어느 대학에 갈지, 무슨 전공을 할지, 어떤 직업을 가질지, 누구를 만나 결혼할지… 인생의 경로를 바꾸는 다양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이미 어느 정도 선택했고, 그 선택을 함으로써 내가 가는 길은 점점 좁아지고 명확해진다.
모든 것이 안갯속에 있던 시절에는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불안감이 컸다. 흐릿했던 테두리가 선명해지듯 많은 것들이 정해진 이후, 삶은 훨씬 더 안정적이지만 가능성과 상상이 끼어들 여지는 점점 줄어든다. 매 선택의 순간마다 가보지 못한 한 세계가 사라진다.
그렇기 때문에 요즘은 너무 이르게 문을 닫지 말자고 생각한다. 이건 이래, 저건 저래라고 결론을 내려버리는 건 쉽지만, 가능성의 세계는 모두 사라진다. 미리 닫지 않고 열린 상태로 두는 것, 백만 원을 삼백만 원으로 만드는 기적, 그 여백을 위해 나는 일단 뭐든 단언하지 않으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