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줘도 기껏해야 두세 그릇
남편이 어린이집 방학을 맞아 윤이를 데리고 3박 4일 시댁에 갔다. 윤이와 남편, 단 둘이서!
나에겐 3박 4일, 72시간 혼자만의 시간이 생겼다. 이 날을 얼마나 고대했는지. 처음 남편의 계획을 들었던 날부터, 항공권 예매 해두고 설레는 마음으로 8월 말을 기다렸다. 그날이 오면 그간 못 봤던 영화를 보고, 책 리뷰도 왕창 쓰고, 러닝도 원 없이 하리라!
그리고 어제 그들이 떠났다. 그런데 이게 어쩐 일인지. 소중한 24시간이 지났는데, 평소보다 뭘 더 했다고 하기 어렵다. 넷플릭스에서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봤고, 40분 정도 러닝을 했고 (더 뛰고 싶어도 너무 더웠다), 마라탕을 시켜 먹었다. 오늘 아침에도 이렇게 시간을 보낼 수 없다는 강박에 일단 브런치를 먹으러 와서 이 글을 끄적이고 있다.
온전한 자유 시간을 맞이한 나는 배고픈 상태로 뷔페에 간 사람 같다. 감질나게 조금씩 맛만 볼 때는 다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막상 다 주어지니 욕심과 달리 금방 배가 불러온다. 어차피 나는 두세 접시면 배가 불러오는 사람이다.
육아는 나의 시간을 떼어 아이에게 건네는 일이다. 퇴근 후 소파에 누워서 넷플릭스 보는 시간을 툭 떼어, 부엌에서 아이가 먹을 볶음밥을 만든다. 나는 시간이 더 있다고 빼어나게 더 훌륭한 인간이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오히려 나는 육아를 통해 내 시간을 탐내는 쓸모없는 것들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워킹맘에게 퇴근 후 갑자기 ’ 맥주 한 잔 콜?‘은 거의 불가능하다. 여행 가이드처럼 아이를 다음 목적지로 이동시켜 ”여기서 1시간 자유롭게 놀다가 다시 모이실게요 “ 같은 일정이 있기 때문이다. 온전히 ‘내 마음대로’는 이렇게 가끔 주어져 더 귀하다. 그런데 ’내 마음대로‘가 평소 일상과 별반 다를 건 없다는 아이러니.
자유는 여행과 닮아 있다. 시간이 많다면 공원 벤치에서 바게트를 뜯어먹으며 느슨하게 보내고, 짧다면 패키지여행 일정처럼 밀도를 높일 수 있다.
시간의 밀도가 항상 꽉 찰 필요도 없다. 밀도를 채우고 비우는 것이 나의 자유다.
오늘은 카페 통창 밖의 푸른 나뭇잎과 매미 소리만으로도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