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업플라이 유연실 Apr 20. 2016

Lesson 7: WFIO의 의미를 아세요?

올해 초 한국에서 꽤 유명한 "권도균의 스타트업 경영 수업"을 읽게 되었다. 난 한국 업체 beSucess가 작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컨퍼런스를 개최할때 after party 에서 우연히 권도균님과 이야기하게 되었는데, 그때는 이 분이 그렇게 유명한지도 몰랐었다. 아마 알았더라면 입 좀 다물고 그 분의 경험담을 들려달라고 더 졸랐을텐데... -_-

어쨌든 각설하고, 이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사업은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흘러간다."는 말이었다. 고객이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문제를 해결하거나 꼭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면, 고객은 그 제품을 사용하게 되있다는 뜻이었다.


난 이 단순하고도 당연한 논리를 몇번이나 다시 읽으면서 불안감에 휩싸였다. 내가 만들고 있는 이 제품이 그렇게 꼭 필요한 것이라면 왜 이렇게 아이디어를 팔기 힘든 것일까? 왜 한 학원과 파트너쉽을 맺는데 일주일 넘게 걸리는 것일까? 이게 과연 내가 세일즈 스킬이 부족해서일까, 아니면 내가 제공할 제품이 시간을 들여 파트너쉽을 맺을 만한 가치가 없는걸까? 나는 내 서비스 기본에 대해 큰 의구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객관적으로 내가 제공할 서비스에 대해 하나하나 찬찬히 뜯어보기 시작했다.


첫째, 좋은 그리고 인기있는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학원들은 내 서비스가 필요없었다. 그들은 항상 over booking 되기 때문에 긴 대기자 명단을 갖고 있고, 이미 많은 부모들은 그들의 존재와 평판에 대해 훤히 꿰고 있다. 이들이 free trial 마저 제공한다면 부모들은 굳이 우리 사이트에서 멤버십을 사지 않아도 된다.


둘째, 1-6세 유아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들은 어른들 수업과 달리 규모가 작다. 엄마(또는 보모)가 함께 참여해야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학원들은 정원을 12명 정도로 제한한다. 평소에 6-7명 정도의 정규 멤버가 있기 때문에 이들이 나에게 줄 수 있는 자리는 프로그램당 3-4자리가 전부이다. 만약, 내 사이트가 고객들을 많이 끌어온다 할지라도 고객들이 좋아하는 수업을 원할 때 듣지 못할 수도 있다.


셋째, 비슷한 아이디어는 같은 시점에 다발적으로 일어난다는 말은 한국 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통하는 것 같다. 내 제품은 작년부터 큰 인기를 끌었던 ClassPass (통합 헬스장 멤버쉽)를 벤치마크해서 시작됐는데, 이 모델을 아이들 activities에 적용할 생각을 한 건 나만이 아니었다.

샌프란 뿐만 아니라 뉴욕, LA, 워싱턴, 시카고 등지에서 똑같은 컨셉의 스타트업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더 많은 프로그램을 더 빨리 들여와야하는 경쟁이 시작됐다.


난 결정을 해야 했다. 누가 누구를 먹기 전까지, 전력을 다해 더 많은 프로그램을 들여와야하나? 무슨 짓을 해서라도 이 시점에 투자를 받거나 개인 돈을 써서라도 마케팅/세일즈로 덩치를 키워야하나? 또 내가 그렇게 하고 싶다고 이 시점에 그게 가능할까? 서비스와 제품에 대한 의구심은 점점 커지고 경쟁은 시작되는 시점에서, 여러 고민들로 잠도 오지 않고 뭘 먹어도 맛있지 않는 날들이 시작됐다.



스타트업 관련 블로그들을 보면 종종 "WFIO"라는 말을 쓰며 희화화할 때가 있다. 이는 "We're F**ked. It's Over" (우리 새됐어. 모든게 다 끝이야.) 라는 뜻이다. 그리고 다들 WFIO의 순간은 앞으로도 계속, 끊임없이 업그레이드된 버전으로 다가올 것이라고 예언한다. 제품의 한계에 대해 하나하나 뜯어보며, 나는 나의 첫 WFIO의 순간이 다가옴을 느꼈다.


한참 고민으로 주름이 늘어갈 때, 예전 회사를 통해 인연을 맺은 현 라쿠텐 벤쳐스 VC 세민님을 샌프란에서 재회했다. 세민님은 고민으로 바싹 늙은 내게 2시간 가까이 '속도' 보다는 '방향'의 중요성에 대해 얘기했다.


스타트업이란게 뭐에요? 특별한 서비스를 제공하는거 아니에요?
마켓은 늘 거기 있으니까 걱정마시고 어떻게 차별화할지 고민해야되요.


빠르게 속도를 내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잡혀 죽을 것 같이 느껴졌던 나에게 이 말은 큰 힘이 되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어디 비단 사업뿐일까? 인생도 얼마나 빠르게 가느냐보다 왜, 어디로, 어떻게 나만의 길을 가느냐가 더 중요한데, 이 당연한 진리를 금새 까먹어버렸던 것이다. 결국 지금 나에게 가장 중요한건 다른 회사들이 샌프란으로 들이닥친다고 해도, 또 기존 회사들이 똑같은 멤버쉽 프로그램을 제공한다해도, 나만이 제공할 수 있는 특별한 그 무언가를 찾아내는 것이다. 


자 해보자고.


(다음 편에 계속)

매거진의 이전글 Lesson 6: '스타트업', 그 정의의 오만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