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7월에 "사업해야겠다!"라는 부푼 꿈을 안고 법인 등록하고 미국 정부와 변호사님들께 피같은 내 돈을 바치기 시작하고 딱 1년뒤 난 첫 번째 프로젝트를 접었다. 개발에 투자한 돈이 껌 값일만큼 벌어 놓은 돈이 억만금이어서도 아니고, '내 사업'에 대한 열정이 식어서도 아니다. 그렇다고 2-3번의 쓰디 쓴 실패 경험을 훈장처럼 여겨주는 실리콘밸리의 문화를 업고, "아싸! 나 이제 한 번 실패해 봤어!!"라며 신바람 나서 때려친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러기엔 난 아직 너무나도 실패를 두려워하고 인정하고 싶지 않아하는 나약한 영혼이다. ㅡㅜ)
그럼 도데체 왜?
사업을 시작하기 전 아이템에 대해 고민할 때에는, 내가 열정이 활활 타오르는 아이템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단지 내 서비스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강력한 믿음만 있다면 그걸로 끌고 나갈 수 있을 줄 알았다.
'우버의 트라비스도 택시 운수 사업을 너무나 열열히 사랑해서 한게 아니라, 자신의 아이디어가 많은 사람들에게 그동안 느낄 수 없었던 편리함을 제공해 줄 수 있다는 강력한 믿음 하에 시작하지 않았을까? 청소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들도, 식료품 배달을 하는 O2O 스타트업들도 마찬가지지 않았을까?'라고 혼자서 정당화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난 내 자신이 내 서비스의 타겟 그룹의 일원인 "엄마"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 동안 가져왔던 생각이 틀렸음을 알았다.
사실 난 전업 주부가 되기 싫어서 사업을 시작한 여자다.
남편 벌어오는 돈으로 알뜰살뜰 살림하고 아이들 쫒아다니면서 일명 '뒷바라지'하는 전업 주부의 모습은 내 인생의 옵션이 아니었다. 난,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자신의 삶을 기꺼이 희생하는 엄마가 아닌, 내 일과 삶을 일구어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엄마가 되고 싶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 activity class, 가족들을 위한 지역 이벤트, 엄마들 meetup 등 전업 주부들이 주로 이용할 수 있는 내 서비스는 나 자신 스스로도 사용하지 않을 서비스였다. 내 삶과 동 떨어진 아이템이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강렬했던 믿음도 맥아리 없이 꺼져버렸다. 믿음이 없다면 앞으로 올 무수히 많은 시행착오들을 헤쳐나갈 동기와 용기도 없어진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고민할 것이다. '내가 열정을 갖고 나아갈 수 있는 사업 아이템 (또는 내가 해결해야할 문제)은 어떻게 찾을수 있을까'라며. 하지만 초/중/고 대학입시만 바라보며 문제집을 달달외워 왔고, 수능 점수 맞춰 간 대학에서는 남들과 비슷한 '스펙'을 쌓아 온 우리에게, '내가 정말로 좋아하고 관심을 갖고 있는 일'을 찾는다는건 어쩌면 생각보다도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건 내가 정말 관심을 갖고 있는 일이 아니다'라는 걸 하나 찾아본 나로서는 한 가지 요령이 생겼다.
내가 이제까지 해 온 '선택'들을 잘 생각해 보는 것
내가 어떤 직업들을 선택해 왔는지, 어떤 사람/순간들을 소중히 여겨왔는지, 인생의 중요한 갈림길에 섰을 때 어떤 길로 갔는지, 어떤 주제에 대해 얘기할 때 흥미진진하게 몰입했었는지 등 지나온 인생 발자국에 대해 조금 더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면 내 가치관에 대해 더 알 수 있을 것 같다. 늘 합리적인 선택을 통해 커리어 패스를 '계산'해왔던 나에게, 내 첫 프로젝트에 매달린 지난 1년은, 커리어적으로 봤을 때 가장 무섭고 불안했지만 행복하게 성장할 수 있었던 한 해였던 것 같다. 이제 다음 프로젝트를 위한 워밍업 돌입! 또 다시 무수한 삽질이 시작되겠지만 적어도 이 블로그에 고백해온 지난 1년간의 삽질 만큼은 피해야겠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