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실수: 혼자서 다 하기
처음에 이 바닥(?)에 발을 딛고 보니, 모두가 입을 모아 말하는 룰이 몇 개 있다는 것을 알았다.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솔로 창업자보다는
서로의 장단점을 보완해주는 공동 창업자 시스템을 원하고,
개발은 내부 직원들에 의해 이루어져야 하며,
많은 투자자와의 네트워킹을 위해서는 엑셀러레이터 프로그램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 등이었다.
이는 물론 상당 부분 맞는 얘기다.
사업의 많은 부분은 어떤 사람들을 내 곁에 두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리니까.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룰에서 벗어나면 꼭 망하는 것은 아니지만,
부가적 개고생이 더 해진다는 점에도 이견은 없다.
하지만 난 이 나라에 막 이민 온 외국인이고, 비개발자 출신의 여자(이거 생각보다 꽤 큼)였다.
네트워크와 세일즈 스킬로 투자자들의 돈을 끌어 봐 보기는커녕, 연고도 기반도 전혀 없는 아웃사이더였다.
부정하고 싶었지만, 난 마치 결혼정보회사에서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불쌍한 D급 고객이 된 느낌이었다.
실제로 공동 창업자겸 CMO(Chief Marketing Officer)를 찾는 과정에서 만난
'자칭' 연쇄 창업가 남아프리카 출신 백인 남자는 나에게,
"넌 인사과 출신으로서 나보다 뭘 더 할 수 있는데?"라며 지분 50%를 요구하기도 했다.
이 개싸가지와의 만남은 이 바닥에서 나의 신분(?)을 철저하게 확인시켜주었다.
결국 난 이상적인 상황에서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자위했다.
생업을 버리며 공동 창업자로 와 줄 개발자를 찾아 프로덕트를 만든 다는 건,
90살 할매가 애 갖는 것보다 더 힘들것 같았기 때문이다.
첫 목표는 최소한의 기능만 갖춘 제품(MVP)을 만드는 것이었기 때문에 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외부 개발팀을 고용하기 전에 내 아이디어를 시각화하기 위해, UX 디자이너 친구(쌩유 제니언니<3)한테 물어봐서 Balsamiq 이라는 툴을 이용해 처음으로 디자인 도안을 만들었다.
(도안 최종본)
처음 작업이었기에 사이트 개발하는데 얼마나 디테일한 도안이 필요한지 몰랐고,
혼자 끙끙대며 장장 일주일에 걸쳐 색상 고르는 것부터 폰트, 사진까지 일일이 다 체크하며 도안을 마쳤다.
(알고보니 이렇게 자세한 도안은 오히려 디자이너의 제안을 저해하기도 한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무식해도 이렇게 무식할 수가....
Fiverr 또는 Upwork 과 같이 전 세계 프리랜서들의 기술을 살 수 있는 곳에서는
$5 - $200만 주면 전문가가 훨씬 빠르고 효율적으로 2-3일 안에 끝낼 수 있는 작업이었다.
문제는 이 도안뿐만이 아니라, 난 그 어떤 노가다도 Youtube 또는 Udemy를 통해
공부해서 하나 하나 내 손으로 작업하고 뿌듯해했다. ㅠ_ㅠ
스타트업은 최대한 적은 돈으로 여러 실험을 해야하기 때문에 창업자가 뽀대나는 일만 할 수 없는건 당연하다.
하지만, 솔로 창업자라고, 아니 솔로 창업자이기 때문에 더더욱 혼자서 모든것을 해결하려고 해서는 안됐다. 혼자서 잘 버티려면 반드시 전략적으로 ROI (Return on Investment)를 생각해야 했다.
이 노가다를 통해 난 무엇을 배우려고 하는가?
줄 이쁘게 맞춰서 도안 만드는 법? 폰트에 따라 변화주는법?
배움이라는 명분하에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했지만, 그에 따른 결과는 과연 그 가치가 있는 것이었는지 좀 더 냉정히 생각해 봤어야했다. 부끄럽지만 나의 경우는 꽤 많은 부분이 그냥 삽질이었다.
요는, 바퀴벌레같은 생명력을 가지려면 제한된 시간과 돈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노려야 했다는 것.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