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유니세프 후원을 끊으려고 했었다.
큰 돈도 아니었다. 몇년간 한 달에 만원씩 내고 있었는데 문득 아까워졌다. 어떻게 후원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나는 손바닥에 잡힌 굳은 살을 만지작거린다. 그냥 그런 버릇이 있다.
타국의 아이들이 굶어죽는 것과 내가 물류창고에서 샴푸박스를 나르고 있는 것이 무슨 상관이 있을까. 매정한 생각일까. 그것도 잘 모르겠다. 하필 더운 날이었다. 일을 하고 있는데 유니세프에서 전화가 왔다. 직원은 나에게 희망을 놓지 말아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그렇게까지 말하는데 거절할 사람은 몇 없을 것이다. 바쁜 와중이라 그냥 알겠다고 대답했었다.
몸이 고되니 물류사람들은 쉽게 화를 내고 쉽게 남을 깍아내린다. 요즘은 말 한마디 한마디가 채찍질처럼 느껴진다. 글쎄. 그렇다고 내가 다른 사람들을 비난할 자격이 있을까? 나는 뭐가 그렇게 다른가? 하나도 다를게 없다. 어느 누구도 원해서 이 자리에 있는 게 아니다. 연차가 쌓이면 쌓일수록 나는 멍청해졌다. 박스를 나르다보면 불쑥 불쑥 위기감이 찾아왔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지금 당장 여기에서 벗어나 다른 길로 가야한다고. 그러나 불안은 늘 용기로 이어지지 못한다.
이번주는 내내 연장근무였다. 퇴근하면서 저녁밥은 너구리를 먹을 지 신라면을 먹을 지를 고민했다. 나는 보통 그런 사소한 고민들 뿐이다. 하늘은 금세 어둑해져있었다. 달이 홀로 떠 있다. 달빛은 왜 저렇게 밝아서 사람들을 꿈꾸게 하는 걸까. 인부들이 사라진 공사현장에서 들개들이 어슬렁거린다. 이 근방엔 들개들이 자주 보였다. 그래서 길고양이들은 도망치기 바쁘다.
집에 도착해서 샤워를 하고 라면을 끓이고 식탁에 혼자 앉아서 유튜브를 틀었다. 난 유튜브없인 밥을 먹을 수가 없다. 늘 그렇듯이 무한도전 모음집을 틀었다. 무한도전은 옛날부터 봐왔어서 언제 어느 때 웃어야 하는지를 알고 있었다. 별안간 박명수가 정준하에게 버럭 소리쳤다. 분명 웃어야하는 장면인데 쓸데없이 놀라서 눈물이 툭 떨어졌다.
굳은 내 살 속에 죽은 태아가 웅크려있는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