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의 과학사냥을 출간하기까지 약 8년이 걸렸다. 처음 철학책을 쓰겠다는 맘은 미래를 예측하겠다는 의도였다. 그리보면 철학을 배우고 철학관을 세우는 방향이 올바른 방향 이기는 하다. 철학은 미래의 예측이므로 운세를 봐주는 철학관이야말로 철학의 최고 직장일 수밖에 없다. 사실 철학뿐만 아니라 모든 학문이 미래 예측을 위해 발전한다. 미래 예측을 할 수 없으니 순수학문이다 뭐다 하면 문턱을 높이지만 미래예측은 학문의 꽃이다.
과학도 미래 예측이니 방향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왜 8년이나 걸렸을까? 이는 기존 철학이 우리의 호기심을 빼앗기 때문이다. 우리를 묶는 습관 탓에 고등학교에 배운 경험론, 합리론 이상을 벗어나기 어렵다. 지식이 경험에서 나온다는 경험론이 있고 아니다 지식은 합리적 이성으로 얻어진다는 합리론을 인식하고 나면 더 이상 배울 것이 없어 보인다. 크로의 철학사냥을 저술하기 전에 저는 각 시대의 대표적 철학자를 나열하고 그 사람들의 주장을 개조식으로 연결했다. 문제는 이 나열 이후에는 생각을 발전시키기 어렵다. 이상한 논리를 전개하는데 이해는 되지 않으며 결론에서 겨우 이해되는데 그 내용은 역시 개조식 답변이었다.
이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여러 종류의 철학사를 살펴보았지만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Naver의 열린 연단의 인문학 강의를 들었다. 철덕같이 믿고 있는 개조식 결론이 전부가 아니라는 의문이 일었다. 모든 현상을 새롭게 해석할 필요가 있었다. 과학지식은 선배들의 주장이 사실일 가능성이 높지만 선배 철학자들은 허풍이 심해 그 이론은 상상을 초월했다. 철학자의 주장을 과학적 관점에서 바라봐야 철학적 논리의 허구를 눈치챌 수 있다. 무자비한 비판자로 돌아서자 기존 철학의 한계가 보이기 시작했고 철학의 발전사가 나타났다.
크로의 철학사냥은 현대 지식으로 무장된 크로와 과거 지식에 매여 있는 기존 철학자 간의 대화가 곳곳에 나온다. 기존 철학자의 주장을 인정하지만 현시점에서 보면 잘못된 부분을 까고 있다. 독자는 두 사람의 대화에서 철학적 현안을 파악할 수 있고 자신이 제삼자로 끼어들 수 있다. 크로는 죽은 철학자들과 면담했고 지구로 돌아왔다.
책을 교정하고 인쇄하는 동안 서강 올빼미라는 철학 포럼에서 현 철학저 문제에 SNS 활동을 했다. 여기는 분석 철학자들의 아지트였는데 내가 분석철학을 거의 파악하지 않은 이유도 있겠지만 재야의 철학자에 대한 배척이 심했다. 문헌을 제시하라 근거를 제시하라 강요가 심했다. 저가 과학으로 무장되어 어느 정도 견딜 수가 있었지만 지구 철학자에게 힘든 신고식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