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완과의 재회
긴 꿈을 꿨다.
- 아가씨. 참새의 혀라는 뜻이야. 우리 가게 이름 말이야. 참새 혀 본 적 없지? 우려내기 이전의 어린잎을 닮았거든.
이내 비행기 착륙을 알리는 기장의 목소리가 들려왔으며 노인의 음성은 잘게 부서져 흩어졌다. 그녀의 손등은 사포처럼 거칠었고, 꿈에서 깨어난 후에도 그 질감은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았다.
모든 입국심사를 마친 순간 왓츠앱의 진동소리가 울렸다.
- 킷실라노 해변에 도착하면 네가 앉은 벤치가 어디인지 알려줘.
로완의 메시지였다.
고개를 들자 바닥에 주저앉아 우는 중국인 아기, 그리고 어쩔 줄 모르는 젊은 부부가 보였다. 깡마른 인도인 아르바이트생은 빨간 부스 아래 분주한 손짓으로 커피를 제조하고 있었다. 사방에서 덜컹거리는 캐리어의 바퀴 소리와 빠른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예약해 둔 리프트를 탑승하기 위해 공항을 서둘러 나섰다. 긴 생머리를 질끈 묶은 중년 남성의 운전자가 멀리서 손을 흔들었다. 그는 트렁크를 열어 올리며 작게 미소를 지었다.
- 여기 말고 3번 칸에서 기다리셨어야 해요.
두툼한 목도리를 벗어던지니 고단했던 비행의 피로가 몰려왔다. 차 안은 빌에반스의 낡은 재즈 앨범이 재생되고 있었다. 다음 트랙의 첫 소절이 시작되기 전, 두 곡 사이의 적막 속에서는 창문으로 추락하는 빗방울의 소리가 들려왔다. 차는 양옆이 탁 트인 도로를 쉬지 않고 달렸다. 좁은 길에서 신호를 기다릴 때는 젖은 나무의 앙상한 잔가지들이 창문을 건드렸다. 중년의 운전자는 아무런 말을 건네지 않았다. 새로운 트랙이 시작될 때마다 핸들 위로 손가락을 툭툭 굴릴 뿐이었다.
빌에반스의 Stairway to the Stars 첫 피아노음이 새어 나오자, 리프트 예약 어플에서는 도착 알람이 울렸다. 창밖으로 킷실라노 해변의 무대가 보였다. 배 나온 캐나다 아저씨 세 명은 꽃목걸이를 두른 채 하와이 포크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다. 엇박으로 엉덩이를 흔드는 아이들, 손에 빵 봉지를 쥐고 객석에서 빠져나오는 연인들, 그리고 어둑한 노을 아래 유유히 지나가는 배가 보였다. 말이 없던 운전자는 트렁크에서 두 캐리어를 힘껏 내리며 내 눈을 응시했다.
- 당신은 무언가가 두렵군요.
그의 차는 작은 점이 되어 사라졌다. 비는 그치고 강한 추위가 킷실라노를 뒤덮었다. 겨울바람과 함께 불어대는 마리화나의 떫은 향이 코끝을 스쳤다. 묵혀뒀던 그리움이 바늘에 찔린 풍선처럼 형체를 잃고 흐트러졌다. 소리 없는 파도 위로 진분홍의 노을이 지고 있었다. 3년 전 그날처럼.
저녁 여덟 시 오십 분. 무대 객석의 가장 오른쪽 줄에 앉아 종이가방 속 꽃다발을 만지작거렸다. 킷실라노 해변공원 입구에 있는 홀푸드마켓에서 산 꽃이다. 연녹색 앙고라 니트를 입은 할머니 직원이 긴 줄기들을 묶어 둥근 물통에 꽂아두고 있었다.
- 우리는 서로 다른 두 영화를 쓰고 있는 거야. 그래서 난 두 가지 색의 꽃을 골랐어.
꽃들을 만지작거리다 팬지와 블랙 튤립을 한 움큼 집어 들었다. 삼 년 전 로완의 음성이 떠올라서였다. 어느덧 분홍빛을 내며 지던 해는 오묘한 남색의 선들과 뒤섞여 녹아버린 아이스크림처럼 사라졌다. 배에서 쏟아지는 빛줄기가 바다의 수면을 관통하고 있었다.
휴대폰 화면의 초침 없는 시계에서 시곗바늘의 똑딱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신경이 곤두서고 손바닥은 축축해졌다.
그리고 아홉 시. 몸의 오른편에서 강한 향수 냄새가 엄습했다. 까만 뿔테 안경과 그 아래로 이어지는 날렵한 코.
로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