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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부 Oct 16. 2024

나를 위해 나를 놓아주려 했던 남자친구

서로에게 말 못 한 비밀

오빠를 김해로 내려보낸 날,

오빠가 없는 집에 들어와 몇 시간을 울었는지 모르겠다.


말도 안 되게 울어서

이대로는 못 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빠에게 다시 올라오라고 하고 싶었다.


하지만 꾹 참았다.

지금 내가 오빠를 올라오라고 하는 건

오빠를 위한 게 아니니까

오빠를 위한 게 아닌 건

결국 이제는 나를 위한 것도 아니다.


아마 내가 이때 이렇게 운건

오빤 아직까지 꿈에도 모를 거다.


눈물을 꾹 참고

매일 아침 오빠와 영상통화로 하루를 시작했다.


이때 회사의 유연근무제가 정말 고마웠는데

평소에 조금 더 일하고 목요일 또는 금요일에 일찍 퇴근 후 김해로 향했다.

일요일 밤까지 어머님댁에서 오빠와 시간을 보냈다.

꽤 많은 시간을 오빠와 함께할 수 있었다.


회사는 서울이고

집은 수원이라

서울에서 김해로 바로 가는 게 더 빨랐기 때문에

매번 큰 가방을 가지고 회사로 출근했다.


그럼에도 오빠를 보러 가는 날이면

힘들다는 마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얼마나 설렜는지 모르겠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오빠가 김해에 내려가 있는 기간 동안

나를 놓아주려 했었다는 거

그런데 못 놓았다는 거

내가 가는 날이면 시계만 계속 봤다는 오빠


쓰다 보니 또 울컥한다.

서로에게 비밀은 없었는데

놓아주려 했다는 건 진짜 몰랐다.


하지만 그 마음이

어떻게 왜 들었는지 이해가 되기 때문에

이 얘기를 알고 있는 것은

오빠에게 비밀로 하고 있다.


우리의 사랑을 질투라도 하는 건지

우리는 점점 더 힘들고 아팠다.


오빠의 암은

"악성흑색종"인데

쉽게 말하면 암세포가 점으로 보인다.

점이 늘어나고 점점 커진다.


그래서 오빠가 좋아지는 것도 나빠지는 것도

한눈에 알 수 있는 게

장점이자 단점인 암이다.


매주 김해로 내려갈 때마다

점은 계속해서 늘어나고

점점 커져갔다.


한 번은 혈뇨가 나와

집 근처 비뇨기과를 갔었는데

엑스레이 상 종양 같은 게 보인다고 해서

방광에 전이가 된 줄 알고

회사에 있는 전화하는 곳에서 대성통곡을 했었다.


다행히 전이는 아니었지만

혈뇨, 신장 통증 등

오빤 하루하루 몸이 아파져 갔다.


걷는 것도 힘들어지고

입맛도 없어서 살은 점점 빠지고

두피 속에도 점이 생겨서

머리도 못 자르고

누가 봐도 아픈 사람이었다.


그래도 김해로 내려가는 길에는

오빠를 본다는 마음으로 내려갈 수 있었는데

수원으로 올라올 때는

더 안 좋아진 오빠를 두고 오는 게

마음이 안 좋아서 올라오는 4시간을 내내 울기만 하다가 집에 도착을 했다.


내가 전문가는 아니지만 알 수 있었다.

이 약이 맞지 않는다는 걸


그래도 키트루다는 효과가 좋은 면역항암제여서

제발 잘 맞길 기도하며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나빠지는 오빠를 보며

급히 병원 예약을 잡았고

검사 일정을 잡았다.


결과는 암이 커져서 약이 맞지 않는다

다음약을 해야 한다.


오빠는 다음 약부터는 하지 않겠다고 했었는데

막상 결과를 들으니 마음이 변했는지

다행히도 하겠다고 해서

바로 다음약을 시작할 수 있었다.


다음약은 매일 알약을 먹는 항암제였다.


간단히 항암에 대해 설명하면

1. 면역항암제(암세포와 싸우는 정상세포에게 힘을 줌)

2. 표적항암제(암세포를 표적 해서 공격함)

3. 1세대(독성) 항암제(모든 세포를 죽여서 암세포, 정상세포 다 죽음)


이 순서로 보통 진행이 되는데

오빠는 1번에서 실패를 했으니 2번으로 가는 것이다.


2번부터는 세포에 영향이 있고

부작용도 있기 때문에 오빠도 하기 싫어했었다.


그리고 나 또한

1번에서 좀 오래 약효가 있다가

나중에 정 안되면 2, 3번으로 넘어가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었다.


근데 1번이 아예 효과가 없다는 건 절망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다행히 오빠 유전자 변이가 있어서 2번이 가능한 거지

표적항암이 불가능한 사람들은 바로 3번 독성항암으로 넘어가야 한다.


독성항암은 흔히들 아는

머리 빠지는 항암, 토하는 항암, 살 빠지는 항암이기 때문에

2번 표적항암을 할 수 있는 건 정말 다행이었다.


이 무렵,

오빠는 어머님과는 더 못 지내겠다며

다시 수원으로 올라왔고

낮에 혼자 두는 게 걱정은 되었지만

나도 오빠의 암과 함께 싸울 수 있는 것이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어린 마음이지만

오빠도 매일 볼 수 있었으니 좋았다.

아침마다 눈물의 영상통화를 안 해도 되고

올라오는 버스에서 눈물도 안 흘려도 되니까


우리는 그렇게

수원에서 2번째 항암을 시작해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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