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로 내려가는 오빠를 잡지 못한 나
결혼식 취소와 동시에 오빠에게 휴직을 하라고 했다.
이건 상의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오빠는 어릴 때부터
너무 열심히 살아온 사람인데
만약 오빠한테 정말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면
회사는 휴직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를 쉬면서
바쁜 일상 대신 여유를 갖고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지내기를 바랐다.
그리고 오빠가 시작하기로 한 항암제는
3주에 1번씩 주사만 맞으면 되는
큰 부작용이 없는
키트루다라는 면역항암제였기 때문에
주사를 맞고 푹 쉬면서 회복하기를 바랐다.
오빠는 회사에서 어느 정도 자리 잡은
과장 직급이었기 때문에
회사를 놓는 것을 많이 고민했었다.
특히 병원에서 교수님이
키트루다 맞으면서 일하는 사람도 많다고 하자
나에게 키트루다 맞으면서 회사 다니면 안 되는지 물어보기도 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난 완강히 거절했다.
오빠가 마음을 편히 하길 바라는 마음이 강했다.
이제는 오빠를 환자로 바라봐줄 때가 된 것 같았다.
다행히 오빠는 오랜 투병 중이었기 때문에
긴 시간을 끌지 않고 휴직을 할 수 있었다.
휴직한 오빠를 혼자 두면 안될 것 같아
나도 한 달 정도는 회사의 유연근무제를 사용하여
새벽 일찍 출근하고 일찍 퇴근해서
오빠 저녁을 차려주곤 했다.
나는 사실 오빠 앞에서는 힘든걸 티를 안 내고
회사에서 우울하다가도
집에 오면 밝게 오빠와 인사를 했는데
어느 날 오빠한테 요즘 마음 괜찮냐고 물으니
"난 괜찮은데 연경이가 괜찮지 않은 것 같다"라고 대답을 했다.
그 말을 듣고는 정말 오열을 했었다.
그런데 내가 울지 않는 계기가 한 번 있었다.
우리는 항암과 식단을 함께 하기로 해서
주마니아라는 암 자연치유(식단, 명상 등) 전도사의
온라인 강의를 들었었는데
그분이 얘기하길
본인이 투병했을 때,
가족들이 울면
'아 진짜 내가 죽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 가족들이 우는 게 싫다고 했다.
이때부터는
오빠의 희망찬 마음에 내 눈물이 방해가 될까 봐
정말 이 악물고 울음을 참은 것 같다.
주변에서 나에게
정말 단단하다고 얘기할 정도로
내가 봐도
내 겉모습은 많이 변했다.
가끔 못 참고 펑펑 울 때도 있었지만...
첫 번째 키트루다를 맞고 부작용이 없어서
우리는 베트남 냐짱으로 여행을 떠났다.
공기도 좋고 오빠도 통증을 덜 느낀다고 해서
좋은 공기가 건강에 좋다면 여기 그냥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아픈 걸 강제로 잊자고 약속이나 한 듯이
예전처럼 평온하게 여행을 즐겼다.
수영을 하고 리조트에서 쉬고
하루하루 행복하게 보내며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한국에 가면 현실을 마주하는 기분이라서
그냥 여기 지금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랐다.
그리고 이때는 정말 마음이 너무 힘들 때라
차라리 비행기가 추락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오빠와 나의 마음이 그만 힘들 수 있게...
여행 이후,
오빠는 자연치유를 하기 위해 매우 노력했다.
삼시세끼 집에서 건강한 요리를 해 먹고
맨발 걷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빠는 오빠 위주로 생활하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갑자기 본인이 김해로 내려가서 생활하고 싶다고 했다.
오빠는 김해가 고향이고 김해에 어머님이 계시다.
어렸을 적 어머님과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했기 때문에
정서적 유대감이나 교류가 많지 않은 편인데 김해로 내려간다는 것은
내가 잘 지냈으면 해서 가는 게 확실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오빠를 잡을 수가 없었다.
회사에서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서
오빠가 혼자 있기 때문에
밥도 챙겨주시고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줄 수 있는
어머님댁에 가는 게
오빠도 나도 마음이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빠를 김해로 보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