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미루고 미루던 항암 시작
흑색종인 듯 점인 듯
생김새가 애매했지만
갑자기 많은 점이 생기는 건
분명 이상했다.
오빠는 서둘러 병원에 갔고,
몇 개의 점을 떼어내서 조직검사를 했는데
우려했던 대로 흑색종이었다.
여러 번 재발이 있었어도
원발 부위인 허벅지 근처였었는데
얼굴, 두피까지 퍼진 점...
원격 전이었다.
(암 근처가 아닌 다른 부위로 전이되는 것)
전신 검사를 추가로 했다.
그 무렵,
패러글라이딩을 예약했었는데
예약금을 내고 나서야
등이 좀 불편하다고 얘기를 해서
"그럼 예약하기 전에 말을 했어야지"
하고 짜증을 냈었다.
오빠는
불편한 거지 할 수 있다고 해서
우리는 패러글라이딩을 하러 갔었다.
검사 결과를 들으러 가기 바로 전날이었다.
벚꽃도 예쁘게 피고,
패러글라이딩도 신나게 탔는데,
데이트를 하고 집에 가는 길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줄줄 흘렀다.
촉 같은 거였나 보다.
다음 날,
회사에 출근을 했는데도 눈물이 계속 났다.
팀장님께 양해를 구하고 병원으로 향했다.
이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그동안 병원에 혼자 가게 한걸 후회하며
병원으로 달려가다가 넘어져서 무릎에 피가 왕창 났다.
우리의 복선 같아서 길에서 엉엉 울었던 나
병원에 도착해서
아무렇지 않은 듯 오빠와 인사하고
엄마랑도 인사하고 셋이 같이 진료실에 들어갔다.
심각하면서도 덤덤하셨는데
교수님도 덤덤한 척하는 것이 느껴졌다.
사진을 보여주시는데
척추뼈에 전이가 되어 있었다.
등이 불편하다는 오빠의 말이 생각나서
미안함에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암환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게
뼈전이, 뇌전이인데
뼈전이였다.
진료실에서
나도 울고 오빠도 울고 엄마도 울었다.
나도 모르게 내 입밖에서 튀어나온 말
"항암 언제부터 할 수 있어요?"
오늘부터 할 수 있다는 말에
오빠를 당일 입원 시켰다.
오빠랑 나는 병실에서 먼저 나오고
엄마가 교수님과 한참 더 대화를 하고 나왔는데
엄마가 진료실에서 엉엉 울며 나왔다.
"연경아, 재민이 6개월 정도밖에 못 산대"
결혼이 2달 남은 날이었다.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엄마는 잠시 기다리기로 하고
오빠랑 둘이 대화를 했다.
"어떻게 하고 싶어?"
"모르겠어, 좀만 생각해 볼 시간을 줘"
나도 이렇게 슬프고 당황스러운데
오빠는 얼마나 슬프고 당황스러울까
나의 마음도 힘들었지만
오빠의 마음을 살피느라 더 힘들었다.
이때부터 나는 오빠의 보호자로서의 마음을 먹었던 것 같다.
내 마음보다는 오빠의 마음을 살펴주는 보호자가 되기로 말이다.
회사로 복귀해서도
울기만 하다가 퇴근을 했다.
남들 앞에서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하는 나인데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평소에는
힘든 일이 있어도
떨쳐내려 노력하는데
지금은 노력할 힘조차 없었다.
그냥 울고 불고
밥 한술 뜰 힘도 의지도 없었다.
고민 끝에 결국 결혼식을 취소했다.
취소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축하받을 상황이 아니었다.
우리는 아빠 회사와 제휴가 된
서울의 한 호텔에서 결혼식이 예정되어 있었다.
애초부터 계획했던 결혼식이
스몰웨딩이 아니었기 때문에
적지 않은 사람들을 초대하기 위해
약속을 잡고 식사를 대접하는 것이 도리인데
식사를 대접하며 축하를 받고 싶은 마음이 아니었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나의 용기부족이다.
오빠는 나에게 미안해서 결혼을 강행하지 못하는 상황이라
결혼식을 진행하려면 내가 책임지고 강행해야 하는데
그럴만한 자신도 용기도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결혼식 두 달 전 결혼식을 취소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