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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부 Oct 17. 2024

일본으로 떠난 겨울 온천여행

평범한 일상이 사실은 호강이다

척추에 하는

뇌연수막 항암치료가 끝날 무렵

연말이 되었다.


4월부터

정말 하루하루 애타는 전쟁 같은 시간을 보내고


어쩌면 올해를 넘기지 못할 수도 있다는

교수님의 얘기도 있었지만

우리는 당당히 12월을 맞이했다.

그것도 생각보다 건강한 모습으로


암과 계속 함께 하다 보니

암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암과 함께 하는 합병증들이 우리를 힘들게 했지

암은 그냥 몽우리 같은 거였다.


몇 년 동안 암과 싸웠기에

몸에 암 몇 개 있는 건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12월을 맞은 서로를 대견해하며

여행지를 골랐고

겨울을 맞아

예전부터 가보고 싶던 온천여행을 가기로 했다.


온천 하면 일본!

하고 일본으로 떠났다.


우리 커플은 연애하면서

다양한 해외를 많이 가봤는데

일본은 사실 한 번도 안 가봤었다.


가보니

너무 가깝고

너무 좋았다.


매일 가성비, 효율성을 추구하던 우리 커플이었지만

이번만큼은 휴양을 위해 좋은 호텔을 예약했다.


벳푸에 있는 렉스호텔,

벳푸는 후쿠오카에서 버스를 타고 좀 더 들어가면 있는

온천 시골마을인데

렉스 호텔은

호텔이면서도 온천에서 바다를 볼 수 있어

전경이 정말 멋졌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바다를 보면

정말 피로가 싹 풀리는 기분이었는데


오빤 온천하면서

"내가 정말 연경이 덕에 호강하는구나"

생각했다고

이런 좋은 호텔을 예약해 줘서 고맙다고 했다.


오빠가 아프고 많은 가치관이 변했다.


쉼 보다는 경험을 중요시했던 우리,

여행지도 휴양지보다는 관광지를 좋아했던 우리,

호캉스 가는 이유를 몰랐던 우리,


이제는 예전과 달리

쉼에 좀 더 집중하는 사람들이 되었다.


벳푸에서 온천도 하고

잠도 많이 자고

건강한 것도 많이 먹고

정말 푹 쉬었다.


일본은 맥주가 유명한데

오빠가 금주를 하니

나도 맥주를 꾹 참았는데

오빠가 시키라는 말에

못 참고 시켰다.


"캬아"

정말 맛있는 맥주였다.


내 앞에서 꼴깍꼴깍 침을 넘기는 오빠에게

한입 선물로 주었는데

너무 행복해했다.

오빠의 이런 행복한 표정은 정말 오랜만에 본다.


암에는 알코올이 정말 안 좋지만

그 순간 우리는 정말 행복했기 때문에

오빠에게 맥주를 한입 준 것이 하나도 후회되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동물원도 갔다.

사람들은 온천의 여행지로 알고 있지만

벳푸는 정말 큰 동물원이 있다.

사자 밥도 주고 캥거루 밥도 주고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다.


벳푸에서의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유후인에 가서는

또 온천을 하고

당고를 먹고 푸딩을 먹고

정말 몽환적이던

긴린코 호수의 안개를 보며

우리 행복하게 해 주세요 기도도 했다.


마지막으로 후쿠오카를 들린 후

한국으로 돌아왔다.


정말 남부럽지 않은 휴가였다.


평소처럼 아끼지도 않았고

평소보다 푹 쉬었고

단 한 번도 싸우지 않았다.


이대로만 쭉 행복하길 바라며

연말을 잘 마무리했다.


오빠가 괜찮았던 덕분에

나는 오랜만에 일상을 보낼 수 있었다.


회사 동기들과 연말파티도 즐기고

가족여행도 다녀왔다.


오빠를 처음 만났을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나의 동생들,

셋째의 취업을 축하할 수 있었고

넷째의 입대도 함께할 수 있었다.


남들이 볼 때는 너무 평범했지만

주위를 축하할 수 있는 것도

여유가 있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고

평범한 일상에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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