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우리 Jun 12. 2022

스물여섯의 스물셋

교사 성장일기의 시작, 오랜 꿈이었던 유아 임용과 취직


어린이집 입사 4개월 차면서 동시에 정식으로는 2개월 차인 현재, 나는 스물여섯의 나이로 아이유 노래의 '스물셋'을 겪고 있다. 



난, 그래 확실히 지금이 좋아요

아냐, 아냐 사실은 때려치우고 싶어요

아 알겠어요 난 사랑이 하고 싶어

아니 돈이나 많이 벌래

맞혀봐

어느 쪽이게?



 아이유의 스물셋은 연예인으로서 겪는 여러 자신의 문제를 녹여냈다는 점에서 나와 차이점을 지니지만, 동시에 스물셋이라는 나이의 상징성을 나타내고 있기도 하다. 이를테면 내면의 혼란스러움, 두려움, 변덕과 같은 것. 그래서 첫 글의 부제는 스물여섯의 '스물셋'으로 정해보았다. 나 또한 이 노랫말 속 상황처럼 혼란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 20대는 혼란스럽고 불안한 나이라고 한 것이 기억난다. 그렇기 때문에 청춘이라고도 한 것도 같다. 가장 빛나는 시작점이 되기도 하지만 여러 의미로 다들 어려움을 겪을 나이이기 때문일까. 스쳐 지나가는 청춘에 대한 곡들이 많다. 유재석의 '말하는 대로'는 20대 어려웠던 시기의 기억들이 녹아든 곡이며, 이무진의 '신호등'은 첫 발을 내딛는 사회 초년생의 심리를 잘 나타낸 곡이기도 하다. 하나같이 가슴을 울리는 가사들이고 노래방을 가면 자주 찾는 곡들이기도 하지만, 오늘의 내 심정은 위의 가사들과 더 비슷하기에 이 이야기는 이쯤 해두겠다.


 아이들이 좋아서 시작한 이 분야는 꽤나 내 적성과 잘 맞아 보였고, 그 와중에 이상적인 꿈을 꾸며 임용고시에 도전했었지만 재수를 끝으로 일단락한 후 취직을 했다. 삼수를 목전에 두고, 부모님의 지지와 지원을 거절하고 '우선 취직해 보겠다' 마음을 먹었던 것은 정확히 1차 시험 발표 이틀 뒤였다. 그리고 무감하게, 때로는 눈물을 흘리며 자기소개서와 이력서를 작성해서 지원서를 제출한 것은- 솔직히 반쯤은 충동적인 일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두 번의 불합격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나의 같잖은 방어기제였으며, 더 이상 무경력 기간이 길어지면 취업이 어려워질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한 도피처였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순식간에 필기시험과 면접을 준비하게 되었으며 최종 합격 메일과 메시지를 받게 되었다. 다소 후다닥 진행된 취업 과정에 당황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임용에서 보지 못한 '축하합니다', '최종 합격하셨습니다' 메시지를 이렇게라도 보게 된 것이 묘한 기분을 들게 만들었다. 그토록 보고 싶던 말이었는데. 그리고 정확히 최종 합격 통지 후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지 않아 출근날이 다가왔었다. 그렇게 나의 수험생 챕터는 종료되었으며, 교사라는 챕터가 시작되어 버렸다. 제법 얼렁뚱땅 말이다.


  누군가에게 나는 임용고시를 포기하고 취업길에 들어선 실패자로 보일 것이며,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꽤나 괜찮은 곳에 취업한 '안 봐도 일 잘할 사람'이 될 것이다. 또 한 편으로는 '그렇게 잘난 척하더니 결국 유치원도 아니고 어린이집을 간 애'라고 생각하는 혹자도 있을지 모른다. 타인의 시선에 민감하고, 또 신경 쓰는 나에게 긍정적인 피드백은 힘의 원천이다. 그 말인 즉, 부정적 피드백에 특히 취약해 눈치를 많이 보는 것이 이 내가 가진 속상한 점 중 하나라는 말이다. 내가 생각하는 나는 우선 떳떳하게 공립교사가 되었어야 하지만, 속수무책으로 흘러가는 시간과 보장되지 않는 미래가 두려워 돌아선 범인이기도 하기에, '맞는 말'을 하는 부정적 피드백이 더 날카롭고 아프다.


 부끄러움으로 점철된 나의 SNS는 합리화의 산물이다. 평소 몸 담은 곳에 애정을 깊게 가지는 성격 상 고등학교/대학교 홈페이지도 종종 들어가 근황을 살펴보는 내가 입사한 첫 직장이니, 어쩌면 꽤나 괜찮은 곳에 들어갔다며 자랑을 하고 싶었던 것도 있는 것 같다. 왠지 모르게 내 노력이 조금이라도 인정받은 느낌이 들기도 하니까. 하지만 한편으로는 실패의 결과로 느끼기도 하기에 '친한 친구'라는 이름으로 볼 수 있는 인원을 한정 지어 놓은 것이기도 하다. 부끄럽고도 부끄러운 점. 내가 생각하는 난 기대치가 정말 높으며, 타인의 인식에 깊게 신경 쓰는 편이므로 떼려야 뗄 수 없는 아킬레스건이 되어버렸다. 나의 빛났던 임용 도전 기록마저도.  

 

 유치원 중에서도 안정적인 공립에 가길 원해 공부했던 내가 열정 페이로 일하는 사립으로 가기 아쉬워 급여를 보장해 준다는 직장어린이집으로 눈을 돌렸을 때는, 그래도 긍정적인 면이 많았다. 영아반이 배정되어 절대 나와 관련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연령의 담임 생활을 시작하게 될 줄은 몰랐으니까. 실습 때조차 겪어보지 못한 만 1세 반 교사로의 시작은 내게 희망찬 시작이기보다 씁쓸하고 눈물 나는 시작이기도 했다. 그럴 리가 없는데도 사회가 나를 보며 '너 그만한 인재 아니야. 네가 뭔데 이 연령은 내심 우습게 보고 절대 할 일 없다고 못을 박아? 꼴좋다.'라며 비웃는 것 같았다. 그래서 지금도 SNS에 '어린이집', '1세' 등 내게 아킬레스건 같은 단어들은 잘 안 보이게 업로드하게 된다. 부끄러움을 숨기기 위해 또 부끄러운 짓을 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그리고 그 와중에도 애사심을 가지고 출근한 현재의 나는, 일주일에 2-3번씩 자괴감을 느낀다. 재능이 없나. 아이들이랑 안 맞는 건가. 영아반이라 정이 안 가나. 학부모들이 초임이라고 나를 무시하는 것 같아. 눈빛이 무서워. 1인분도 못해내는데 동료 교사 선생님들이 내 어쭙잖은 열정을 보며 속으로 부담스럽고 거리감을 느끼면 어쩌지. 또 실수했네. 여기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나 어린이집에 계속 다녀도 되는 건가. 여기서 몇 년이면 유아반을 할 수 있지? 이직을 해야 하나. 한다면 어디로 가야 할까. 그 후엔 아쉬움이 없을까? 와 같은 잡다구리 한 생각 속 찌꺼기들로 인한 불안감, 혼란스러움이 그것들이다.

 

 직장 이름이 좀 있는 곳이라고 혼자 합리화하며 자부심을 가지기에 그래, 여기서 계속 버텨보자. 남들도 괜찮은 조건이라는데 왜.라는 생각을 하다가도 '직영으로 가볼까. 거긴 돈을 그래도 많이 준다는데. 그게 정말 끌리는데. 정규직이라는데. 회사 직원들과 동급이라는데.'라고 생각하며 정보를 모으기도 하고, 언제까지 다니다 다시 임용고시 공부를 시작할까. 한국사 자격증부터 차근차근 다시 해야 하나? 티오는 다시 언제 늘어날까. 내가 될까? 아예 다른 직업은 어때. 바닥부터 다시 세워야 할 텐데 뭘 하지?라는 생각.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막연함에서 뻗어나가는 잔가지들이다.


  돈을 많이 벌고 싶어요. 사회초년생뿐 아니라 모든 사람의 바람일 것이다. 지금의 나도 당장 조금은 더 힘들더라도 투잡까지 생각하고 있는 판이니 이맘때 초년생들이 다 느끼는 감정 아닐까. 거기에 '영아 말고 유아반 하고 싶어요. 영아반은 내가 생각했던 교사의 삶이 아닌 것 같아.'라는 아쉬움에서 시작되는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이 포함되어 혼란스러움이 가중되는 것 같다. 20대 사회초년생의 1년은 불안이라는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요즘 들어하게 된다. 


  친구나 지인들에게 이런 내 마음을 고백하더라도, 결국 나의 삶은 내 것이기에 그들은 공감과 조언으로 내 마음을 편케 해줄 수 있을지언정 버라이어티하게 내 삶을 바꿀 수 있는 키는 되지 못한다. 오히려 그들에게 지루한 남의 얘기를 계속 듣게 하는 것이 더 미안해질 수도 있기에 택한 차선책이 혼자 생각을 정리할 일기를 쓰자.라는 것이었고 그렇게 교사 성장일기가 탄생했다.

 

 글에서부터 느껴지는 두서없음과 혼란스러움이 딱 지금의 나를 오롯이 담고 있는 것 같다. 나중에 보면 부끄럽고 민망하며 지리멸렬하다고 느낄지 모르겠으나 정제되지 않은 이 글이 딱 모자라고, 부족한 내 스물여섯의 스물셋의 감정을 담고 있으므로 우선은 만족하며 마쳐본다. 그리고 날 위해 하나만 남겨봐야지. 


 하루하루에 '일희'는 하되 '일비'는 지양해보자. 울 필요 없다. 울 정도의 큰일이 아니다. 그리고 나는 잘 해왔으며, 이보다 더 잘할 수는 없으며, 앞으로도 잘할 것이다. 


 2022.04.03. am2:51


매거진의 이전글 '유아교사'에게만 요구되는 것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