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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우리 Jun 14. 2022

트루먼쇼 바깥으로 나가기 위한 방법

이유가 있고 정당하며 상대의 감정을 건드리지 않는 방식의 피드백이라면.



 최근 느낀 점인데, 수업 주(우린 대체로 헤드 주라고 부른다.)가 끝나는 금요일이면 메이트 선생님께서 오후에 혼자 소수 아이들을 보육할 때 교실에 들어오셔서 "이번 주 어땠어요?" 하고 물어보신다. 이때 내가 해야 할 말은 대체로 실수를 복기하고, 간단하게 한 주를 성찰해보는 류의 말이다. 물론 부담스러워하시니 아주 가볍게 스쳐가듯 하는 것이 포인트이다. 아무튼 학급 헤드 선생님이 이렇게 물어오시는 때면 대체로 긴장을 하는데, 지금까지의 경험 상 고쳐야 할 점들을 이야기해주시기 때문이다. 오늘도 벌써 내가 실제로 준비한 4번째 헤드 주였으며 실행한 3번째 헤드 주였으나 '이러이러해서, 맞춰야 할 부분들이 있을 것 같아요.'라는 말을 들었다. 조언으로 해주시는 말이고 당시에는 나 역시 진지하게 듣고 간단히 네- 하고 대답하고 끝나는 내용이지만, 집에 돌아와 곱씹으면 정말 보완이 필요한 부분들이 맞는 것 같다.




- 실외놀이 2-3명 먼저 되면 '먼저 갈게요' 말하고 이동하기

- 손 씻고 나갈 때 '(몇 명) 나갈게요' 말하고 이동하기

- 이동 시 아이 간 간격 벌어지면 중간에 멈춰서 모이면 이동/교실로 들어가기

-  전원 등원일 때 간식 책상 배치 가로로 길게 3개 이어서.

- * 점심때 감탐 쪽 반원 1 / 소화기 쪽 네모 2 / 문 쪽 반원 / 쟁반 및 밧트 역할 창문 쪽 교구장 위에 배치

- * 점심 전 손 씻고 비어있는 식탁에 애들 모은 후 손유희하고 있는 걸로 맞추기

   ( → 손유희 레퍼토리 3-5개 숙지 필요)

- 1명 휴가일 때 헤드 : 오후 간식 때 2명 정도 남아 간식 먹을 타이밍에 기저귀 갈이 유동적으로 하기.

  (간식 지도 - 책 읽어주기 - 2명 정도 남을 때 전체 아동 보면서 이동 전 기저귀 갈이)




 잊지 않기 위해 기억해야 할 사항들을 대체로 카카오톡 내 프로필 채팅으로 남겨두는데, 일기에 남겨둬도 먼 훗날 '아 이때 이런 점들을 기억하려고 적어두기까지 했었구나-' 하면서 추억하기에도 좋을 것 같아 일기에도 남겨둔다. 정리해보니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이번 주에 내가 주도해서 잘하지 못한 부분들이고, 확실히 더 이상의 다른 선생님들의 도움 없이 해나가야 할 부분들이기는 하니 말이다. 사실 그런 피드백들이, 너무 사실적이고 적나라해서 눈 마주치고 듣기 민망하기도 하다. 그래도 입에 쓴 약이 몸에 좋다고, 내게 필요한 요소들을 지금 콕 집어 말해주시니 이 점 덕에 내가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거겠지 생각하며 받아들이면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기도 하다. 원체 타인에게 부정적인 피드백받는 것을 두려워하고 오래 기억에 남는 편인 탓에 이렇게 대놓고 나의 언행에 대하여 지적으로 느껴지는 피드백을 받는 것이 오랜만이지만, 이전까지의 삶에서 내가 어떻게 살아왔든- 지금의 나는 부족함 많은 신규가 맞으니까. 오히려 신규라는 이름이 방패가 되어주는 첫 해, 올해 동안 많이 실수하고, 많이 지적받되 노력해서 발전해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대학교 다닐 때, 나는 내가 나름대로 정말 꽤나 괜찮은 사람인 줄 알았었다. 모의 수업, 필기시험, 조별 과제, 교수님과의 관계 등 학업적으로 적어도 부끄럽지 않을 만큼 생활을 한 편이었기에 "너 이건 별로다. 다시 생각해봐"라든지 "이건 이렇게 수정해야 할 것 같아 방향이 아예 틀렸네"라고 말해주는 사람보다.  "너 정도면 됐지 너무 완벽해", "내 계획안도 봐주라" 같은 입에 단 말만을 더 많이 들었던 것 같다. 그러니 정말 그런 사람으로 나를 인식하는 오만함도 생겼었는지도 모르고. 어찌 보면 그 안에서 난 우물 안 개구리로 살아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오랜만의 지적다운 지적에, 온몸이 부끄러움에 털이 바짝 솟는 느낌을 받는 것은 상당히 어떤 의미로는 기념비적인 일이다. 나라는 사람을 다시 제대로, 객관적으로 볼 시간이 되었다는 뜻이니까.


  매 년 다른 짝꿍 메이트를 만나면 기존의 스타일과는 다른 방식으로 학급을 운영해 나가며 혼선을 빚는다고 한다. 당장 첫 번째 단추를 끼우는 일부터 이토록 어려운데 '이대로 해야 해'라고 생각하며 배웠던 것을 또다시 수정하며 내 안의 지식이 조절되는 경험을 하게 될 땐 얼마나 또 혼란스러울까. 끊임없이 바삐 움직여야 하는 교사의 삶이 내게 잘 맞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생각보다 더 겁나는 일인 것 같기도 하다. 도대체 어떻게 이곳의 일원으로서 내가 교사로 인정받고, 정당하게 지문을 찍고 출퇴근을 하며, 학부모들 앞에서 선생님으로서 응대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약간은 트루먼쇼처럼 나의 <교사 도전기> 놀이에 모두가 가담해 주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비현실적인 착각이 들기도 한다. 트루먼쇼는 너무나 유명한 작품이지만 나의 작은 일상부터 일생의 희로애락들이 모두 방송을 위해 조작된 상황임을 인지하며 이를 벗어나기 위한 내용을 담고 있는 영화이다. 그러니 쉽게 말해 롤플레잉같은 것이다. 의료인인 여친을 연기하는 배우, 상담사를 연기하는 배우, 아버지를 연기하는 배우...


  아무튼 우스운 일이지만.. 이 영화가 떠오를 만큼 요즘의 나는 그 자체로 신기함을 경험하는 중이다. 그만큼 나의 매일이 평범하지 않다고 느껴지는 것도 같다. 그러니 나는 모두가 나의 이 어설픈 <놀이>에 맞춰주는 상황을 빨리 탈피하기 위해서라도 오늘의 피드백을 얼른 먹어치워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꼭꼭 씹어먹어 내 것으로 만들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2022.05.20. PM.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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