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우리 Jun 17. 2022

교사를 하면 안 되겠다. 나는 못하겠어 (2)

오늘 배운 큰 것 하나, 긴장이 필요하다는 것

나 홀로 교실에 있었던 시간에, 순식간에 발생한 안전사고. 그 사건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내가 내 입으로 안전사고를 발견하지 못했던 영상을 보시라고 정확한 시간을 알려드린 셈이었다. 당연히 해야 하는 말이었지만 참 괴롭고 괴로웠다.


 CCTV  없이 다른 선생님들이 보셨고 나는 우선 일과 진행을 도우며 교실로 돌아가 대기하는 중이었다. 이미 눈물이 그렁그렁 차올라서 어떡하지, 어떡하지 하는 마음이 머리를 지배했다. 잠시 , 돌아온 선생님이 "놀랐죠 선생님도?"라고 말하셨다. 나는  다급한 상황에 나의 같잖은 감정을 걱정해 주셔야 하는 선생님께 그마저 죄송하여 고개를 저으며 "어떻게 됐어요?"라고 본론부터 여쭸다. 발단은 놀잇감이었다고 한다. B 놀잇감을 들고 있을  A B 놀잇감을 빼앗으려고 하다 일순간  아이를  것이라고 했다. 나는  시간 동안 그런 물림 사고가 일어난  몰랐었고, 그게 내가 저지른 최악의 실수였다. 나는  시간에, 다른 아이들의 기저귀를 갈고 머리를 묶느라  상황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던 것이다.


 울음소리가 들리자마자 다가가 아이들을 분리시켰는데, 바로 전신의 상처 유무를 파악하지 않은 것도 실책이었다. 아이가 오후에 배변하지 않았더라면 그 난리가 난 아이를 가정에 그대로 보냈을 뻔한 상황이었다. 그로 인해 메이트 선생님은 부모님께 전화드려 상황을 설명하고, 얼굴을 뵙고도 죄송하다고 말씀드리셔야 하셨고 나는 죄인 된 마음으로 교사실로 이동하여 눈물만 삼켰다.


결과적으로 매우 속상하셨을 부모님의 마음을 우리가 전부 전달받진 못하지만, 정말 면목없지만 감사하게도 큰 일 없이 일단락되었다. 부모님에 대한 신뢰감을 떨어트리고 늦게 발견한 나로 인해 큰 상처를 얻게 된 그 아이에게 죄스러운 마음에 눈물이 멎질 않았다. 또 다른 동료 교사 선생님들을 곤란하게 해 드리고 쉬지도 못하시고 함께 마음고생하시게 만들어 드린 점도 굉장히 죽고 싶은 마음을 들게 했다. 그냥 직장을 이대로 뛰쳐나가고만 싶었다. 내가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될 존재로 느껴졌다. 그때 느꼈다. 나는 교사를 하면 안 되겠다. 나 이거 못하겠어.


영아반 교사를 못하겠는 걸까? 아니면 영아/유아는 핑계고 그냥 내가 전체 시야를 잘 보며 안전관리를 하지 못하는 무능력한 사람인 걸까. 어쩌면 아예 교사와는 맞지 않는 것일 수도 있겠다고 느꼈다. 교사실로 이동하여 일이 발생한 이후부터 정황을 들을 때, 주변 선생님들이 우려 섞인 걱정을 하실 때, 일이 무마되고 개선점을 전달받을 때, 모든 게 끝나고 마음고생했겠다며 나를 위로해주시는 말을 한 두 마디씩 전달해 주시는 선생님들 눈을 마주칠 때. 이 모든 순간에 눈물이 그렁거렸다. 억지로 참아내려고 애써 무례하게 고개를 돌리고 하늘도 보고 다른 곳도 응시했다. 너 때문에 애가 그렇게 다친 셈인데, 감히 '울지 말라'는 위로가 필요한 눈물을 흘려? 자격이 없다 못해 뻔뻔하기가 짝이 없다고 이성적으로는 생각했지만 마음은 달랐나 보다. 상황도 다급한데 나까지 달래야 하시는 선생님들께 두 배 세 배로 죄송해졌다.


 그날 저녁, 집에 오는 길에 정말 끅끅- 아니 꺽꺽거리면서 울었다. 엉엉 운 것도 같다. 일은 마무리되었다지만 상처는 남았으며 부모님의 마음도 찢어지실만한 일임을 알기에. 어머님께도 그저 너무 죄송했다. 침대에 누워서도 울고, 눈이 퉁퉁 부어 다음날 똑같이 출근해서 낮잠시간이 된 때에도 울었다. 알림장은 다 쓰고 아이들이 깨어나기 전, 고요한 교실 한가운데 앉아 다친 아이 상처부위를 한 번 열어 살펴본 후 한 바닥 소리 없이 울어버렸다. 희미하게 커튼 사이로 흘러들어오는 빛을 바라보며 그냥 눈물이 났다. 이 어리고 작은 아이들을 만지기가 그냥 무서워졌다.


 내가 교사를 해도 될까. 누구나 한 번은 초임 때 겪는 일이라고, 한 번은 겪는다며 위로를 해주시는 감사한 분들이 계셨지만, 교사가 천직이라는 분들 중엔 그렇지 않은 분들도 계셨을 것이고, 모든 1년 차 교사가 이렇게 큰 사고를 내는 것도 아닐 텐데. 시작부터가 어그러져버린 것은 아닌지 하는 의문이 들면서 나는 왜 아직도 이렇게 부족한가에 대해 생각했다. 원장님까지 나서셔야 했을 정도로 심각한 상처였다. 손톱으로 긁은 상처 하나도 확인하고 얼음찜질해가며 알리는 우리 원 특성상 있을 수 없는, 교사 공지로 나올만한 큰 사건이었다. 그리고 그 원인이 나였다.


 내가 조금 더 눈을 자주 돌렸더라면, 조금만 더 일찍 알아차렸더라면. 우는 소리가 나기 이전에 더 잘 봤었더라면. 아니 그 때 다른 아이 기저귀를 갈지 않았더라면, 일어난 아이들 머리를 굳이 내가 그때 묶지 않았더라면. 괴로움이 나를 짓눌러왔다. 시간이 조금 흘러 무뎌진 듯 괜찮아진 듯했으나 다시 떠올리면 아직도 충격 그 이상이었던 그날의 기억은 아무래도 잊히지 않을 것 같다. 내 일생 최초의 지옥같은 교사생활 실수이기 때문이다. 교사로서 그저 그 아이에게 미안하다는 마음만 들고, 조금 더 나은 교사이지 못해서 괴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남은 8개월 동안 내가 이 아이들을 안전하게 잘 볼 수 있을까. 질 높은 상호작용이고 수업 준비고가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교사로서 아이들에게 좋은 교육을 제공해주고 싶었는데, 아이들은 안전함이 1번이었다. 큰 것을 배웠다. 아직 아물지 않은 마음의 상처로 인해 나는 너덜너덜해져 있는 상태이지만, 진짜 상처를 입은 그 아이에게 못할 짓을 더 하지 않기 위해 정신을 차려야 한다. 내가 바뀌어야 이 아이들도 안전한 것이다. 중도퇴사는 내 인생에 일단은 없는 걸로 하기로 했으니까. 1년을 마무리할 때까지 충분히 고민해야겠다. 내가 교사가 안 맞는 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명의 여지가 없는. 나로 인해 생긴 안전사고였다, 이번 일은. 두 번은 안된다. 두 번은 절대 없어야 함을. 잊지 말자. 두 번째엔, 나도 날 이해할 수 없는 거다.



2022.06.17.AM 01:01

매거진의 이전글 교사를 하면 안 되겠다. 나는 못하겠어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