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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우리 Jun 19. 2022

원래 이렇게 정신없는 게 맞나?

일과 진행에 허우적대며 본질을 놓치는 것에 대한 우려

  근무를 하다 보면, 하루가 정말 빨리 지나간다고 느낀다. 등원 맞이, 오전 간식, 오전 실내 자유놀이와 실내외 놀이터 놀이, 그 사이사이 손 씻고 물 마시는 등의 전이 시간, 그리고 개별적 지원이 필요한 점심시간, 양치 및 조용한 놀이시간, 낮잠시간, 다시 오후 간식, 오후 실내외 놀이터 놀이시간, 전이 시간, 오후 실내놀이시간, 석식시간. 바쁘게 휘몰아치는 하루 일과를 보내며 어떤 날은 정신 차려보면 낮잠시간이 되어 기분이 좋은 날도 있지만, 퇴근하는 길에 떠올려보면 아이들과 내가 오늘 질적인 관계를 맺은 사실이 있는가에 대한 찜찜함이 남는 날이 많다.


 기저귀를 갈고, 손 씻기를 지도하고, 밥 먹기를 지도하고, 놀이에 대한 반영적 상호작용 및 안전에 대한 반복적인 안내, 외출을 위한 옷 입고 벗기기 등 하나부터 열까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아이들의 '대신'이 되어 주어야 하는 영아반 교사의 특성상 실제로 눈을 마주치고 정서적으로 교류하는 시간이 총 근무시간 중 얼마나 되는가에 대해 의문이 든다. 눈은 마주치지만 안전지도를 하며 단호한 눈빛을 할 때 말고는, 심지어는 제대로 눈을 마주치고 소통하지 않은 날도 있지 않나 싶을 때도 있고.


  이게 영아반 교사이기 때문이 아니라 분명히 초임교사인 나의 능력 부족에서 오는 것임을 안다. 실수를 하지 않는 것이 가장 1번인 나에게, 안전지도가 1번인 나에게 질 높은 상호작용과 흥미로운 방식의 수업 진행이 먼저가 될 수 없기 때문이었다. 학교에서 이론만 배울 때에는 후자에 대해서만 배웠으며, 그것을 잘 해내는 것이 교사라고 느꼈다. 그리고 담임교사가 되어 첫 수업 준비를 하며 열정적으로 고민할 때, 나는 진짜 교사가 되었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짧은 몇 개월의 시간 동안 느낀 것은 참 씁쓸하게도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라는 생각이었다. 좋은 수업, 좋은 소통 이전에 아이들이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어야 함이 가장 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나서는 고민이 든다. 내가 동시에 이 모든 것을 능숙하게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어떠한 노력을 해야 하는가. 한 번에 두 가지 영역의 능력을 향상시켜야만 하는 어려운 상황에서 당장 안전에만 신경 쓰자니 바라 왔던 본질을 놓치는 것 같고, 교사로서의 정체성을 잃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다고 후자만을 위해 지금처럼 하자니 안전에 대한 것을 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한 번에 두 가지를 다 잘하고 싶다는 욕심. 과유불급이라고 과하면 오히려 안 하느니만 못한 법인데 나는 그 어느 것도 놓고 싶지 않은가 보다. 정신없이 매일 해야 할 일들이 매뉴얼화되어 기계의 부품처럼 일하는 내 모습에서 '교사'를 찾을 수 있는가에 대해 고민이 드는 밤이다. 아이들에게 정말 흥미롭고 재미있고 배울 수 있는 것들을 알려주고 싶은데, 그것에 다가가기에는 내가 아직 많이 부족한 것이다. 돌아오는 월요일부터 나는 어떤 마음가짐을 가진 교사, 어떤 모습으로 아이들을 대하는 교사가 되어야 할까?


2022.06.19.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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