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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우리 Jul 09. 2022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는 성과

영유아 교사의 가치에 대한 고민


 낮잠 시간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폭풍 같은 오전 일과를 보낸 후 아이들을 하나씩 재운 후, 알림장을 시간 내에 작성하고 나면 수면량이 적은 아이가 일어날 시간으로부터 10분에서 15분 정도가 내게 주어진다. 아주 작은 목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교실은 자장가 소리만 크게 울려 퍼지고, 블라인드 사이로 스며드는 햇빛이 만든 바닥의 빛 자국을 차분히 바라보다 보면 여러 상념에 잠기고는 한다. 


 '이 작은 아이들을 가르치고, 기르고, 키우는 것이 교사구나. 그리고 그 교사가 바로 나구나. 오롯이 나 홀로 키운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 아이들의 하루하루를 어느 정도는 내가 책임지고 있는 셈이구나'. 그렇기 때문에 드는 책임감은 나로 하여금 이제 막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딘 초임교사가 아닌 것처럼 정신을 차리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그래서 난 그 고요하지 못한 공간의 이질적이게도 고요한 그 일정 시간이 좋다. 그렇지만 그러고 있다 보면 하루하루 달라지는 다양한 고민들을 내 오늘의 현실과 비교하며 되뇌게 만드는 부작용도 있는 것 같다.


머리를 맞대고 개인 침구에 누워 새근새근 자는 아이들을 보며 그런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아이를 기르는 일은 이토록 어렵고도 힘든 일인데. 그 노고는 인정받기 어려운 현실이 참 씁쓸하다고. 아이들의 성장은 일반 회사원들이 주로 작성하는 보고서나 프로젝트처럼 결과물로 잔존하는 것도 아니고, 어쩌면 조금만 무심하면 '그냥 때 되면 알아서 크는 거 아니야?'라고 할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누구의 공이 컸고, 누구로 인한 성장을 했는지가 드러나지 않는 것이 인간의 성장이므로 더욱 기억하고자 노력하지 않으면 그 역할의 공은 사라지는 것만 같다.


 초중등학교 교사는 가끔 한 두 명의 제자가 졸업 후 찾아와 인사하거나 존경하는 교사- 등으로 기억해 줄 법하지만, 영유아 교사는 대개 성인 무렵이 되면 기억에서 희미해지기 마련이다. 그것을 알면서도 이 직업을 택한 것도 맞지만 가끔은 그런 복합적인 아쉬움이 남는 것 같다. 어찌 되었건 당장 내가 오늘 이 아이들의 질 높은 하루를 책임지기 위해 노력하건만 흩날리는 재처럼 사라지는. 이 형태 없는 노력은 주목받지 못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깊게 다가와 박힌다. 고귀하고도 중요한 역할임에도 그 수고를 치하받지 못하는 교사들의 삶이 잔인하기도 하다.


 사람을 만나고, 사람을 키워내는 것이야말로 가장 내가 바라 왔던 것이며 성장을 돕는 것이 내 행복이었는데, 요즘 왜 이런 생각이 드는지는 모르겠다. 그렇다고 컴퓨터 앞에 앉아 서류 업무만 하는 것이 내 꿈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일반인에게 있어 영유아 교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좋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아쉽기 짝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어느 부분이 변경되어야 할까? 또 일반인과 학부모의 필요에만 맞추어 교사가 자신을 좁은 모형 틀 안에 가둬야 하는 것일까. 부모가 바라는 대로 특별활동과 사교육으로 점철된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일반인이 원하는 인식대로 원피스를 입고 긴 생머리를 한 채 호호 웃으며 "얘들아 놀이터 가자~" 말하기만 하는 너그럽고 순한 교사상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최근에 고민이 많다. 


 수요에 의한 공급을 하기 위해 변화하는 사립 현장의 교육과정, 점점 가정의 역할까지 기관에 맡기는 사고방식, 그리고 아직도 남아있는 '보육교사, 유치원 교사는 문란하다'라는 편견들. 이 사이에서 나는 아이들을 질 높은 교육을 통해 성장시킨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한다. 속 좁지만 이 이상주의자가 바라는 세상이 온다면, '놀이중심으로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도록 교육과정을 편성하며, 열정적이고 적극적인 성격을 필요로 하여 다양한 소통 능력과 사고력, 창의력을 바탕으로 자긍심을 고취시키는 직업'이 영유아 교육/보육기관의 교사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만져지지 않는 것이 나의 직업에서의 결과이기에, 그저 내 작은 노력이 변화의 씨앗이라도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끄적여 본 글.



2022.07.09.AM.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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