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양의 위로 09
마음이 가라앉은 어느 날, 지인이 밥을 사겠다고 합니다. 어둑어둑 조명 아래의 둥근 테이블에 앉았습니다. 잘 닦인 금색 나이프와 스푼과 포크가 가지런히 놓여 있어요. 대접 받는 기분에 맘이 설레입니다.
어두우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여요. 잘 쓰이려고 잘 닦아놓은 포크가 잘 보이고, 잘 담아 먹으라고 넉넉하게 퍼진 스푼이 잘 보여요. 테이블 구석에는 곡선을 그리는 유리 물병의 라인이 우아해 보여요. 물잔에서 반사되는 빛 한줄기가 아름다워 보여요. 달그락 그릇과 포크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고, 나즈막히 오가는 말소리가 들려요.
어두울 때 숨소리가 들리고
우울할 때 소소한 게 보여요.
함께 앉은 지인의 반짝이는 눈빛이 보이고, 오물조물 움직이는 작은 입이 보여요. 온몸으로 나를 향하는 이야기가 보여요. 표나지 않게 위로하려는 그의 마음이 보여요.
어두우면 더 잘 보여요.
_연우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