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서 4장
숲을 벗어나려던 순간,
발소리가 다시 가까워졌다.
숨을 죽인 채 번져오는 기척.
사신무의 군사들이었다.
달빛 아래,
갑주의 그림자가 나무 사이를 스쳤다.
짧은 명령이 낮게 흘렀다.
“놈들을 놓치지 마라.
청룡 장군님의 뜻이다.”
청년은 연을 등 뒤로 물리며 한 걸음 물러섰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바람의 결이 미묘하게 틀어졌다.
숲의 정적이 갈라지듯,
어둠 속에서 또 다른 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선두에 선 사내는
검을 쥐고 있지 않았으나,
그의 기척만으로도
주변의 공기가 먼저 식었다.
그가 낮고 분명하게 말했다.
“이 길을 지나선 안 된다.”
군사 하나가 비웃듯 고개를 기울였다.
“누군 줄 알고 길을 막나.”
그 말이 끝나기 전,
곁에 서 있던 무사가 움직였다.
발끝이 땅을 딛는 순간,
검은 이미 허공을 갈랐고
밤은 짧은 비명을 삼켰다.
단 몇 차례의 호흡.
쇠가 맞부딪히는 소리는 뒤늦게 도착했고,
군사들의 몸은
거의 동시에 무너져 내렸다.
숲에 다시 고요가 내려앉았다.
나무 사이로
바람만이 지나간 자리를 더듬고 있었다.
청년은 조심스레 고개를 숙였다.
“도움을 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무사는 말없이 그를 바라보다
낮게 말했다.
“여긴 오래 머물 자리가 아니다.”
청년의 시선이
선두의 사내에게로 옮겨졌다.
“그대들은 누구시오.
이 밤에, 어째서 저희를 돕는 겁니까.”
짧은 침묵.
무사가 한 발 물러서며
예를 갖추었다.
“이분은
정도전 대감이시다.”
그 말과 함께
공기가 잠시 가라앉았다.
숲의 어둠마저
한 겹 더 내려앉은 듯했다.
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청년도 말없이 숨을 고르며
검자루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정도전은 천천히 그들을 바라보았다.
“내가 그리던 나라는
이런 밤을 품는 땅이 아니었다.”
청년은 조심스레 물었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이런 피가 멈추지 않는 겁니까.”
정도전의 시선이 숲 너머로 옮겨졌다.
이미 꺼진 불 위에 남아 있는,
지워지지 않은 흔적들 위로.
“누군가는 베어야 길이 열린다 말하지.
나는 남겨야 길이 이어진다 믿었다.”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
침묵이 길어졌고,
그 사이 바람이 한 번 더 지나갔다.
“하지만 지금은
그 믿음이 어디에 닿고 있는지,
나조차 쉽게 말하지 못하겠다.”
숲 사이로
바람이 낮게 흘렀다.
“서로 다른 칼이
같은 하늘 아래를 향하고 있다.”
청년은 한 걸음 다가서려다
멈췄다.
“그렇다면,
저희는 어디로 가야 합니까.”
정도전은 곧장 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길 한쪽으로 몸을 비켜섰다.
“나는 너희를 막지 않겠다.
다만
어디에 서게 될지는
너희 스스로 견뎌야 할 것이다.”
청년은 고개를 숙였다.
연도 조용히 몸을 굽혔다.
“고맙습니다.”
그들은 다시 어둠 속 길을 향해 발을 옮겼다.
그러나 마음 한편에는
누군가의 말이 아니라,
선택의 무게만이
길게 남아 있었다.
정도전 일행은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서로 다른 뜻을 품은 채,
같은 밤 아래에서.
그날의 어둠은 길었고,
말과 피,
그리고 아직 식지 않은 불길의 그림자가
겹쳐진 채
천천히 새벽을 향해 기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