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춘 하늘 아래

정의의 서 10장

by 연월랑

비는 오지 않았다.

하늘은 흐렸지만
아무것도 쏟아내지 않았다.
전쟁이 끝난 뒤의 하늘은
늘 그런 얼굴이었다.

윤검은
마을 끝에 서 있었다.

불타지 않은 집과
불타버린 집의 경계.
그 사이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울지 않는 얼굴,
말을 아끼는 눈.
누구도
이긴 쪽의 표정을 하고 있지 않았다.

그때,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빠르지 않았고,
숨기지도 않았다.

사내 하나가
말에서 내렸다.

관복은 아니었으나
허투루 걸친 옷도 아니었다.
전장을 다녀온 사람의
먼지가
아직 소매 끝에 남아 있었다.

정도전이었다.

그는
윤검을 보았고,
윤검 역시
그를 알아보았다.

두 사람은
서로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네가 본 전장은
어떤 곳이었느냐.”

정도전이 먼저 물었다.

그 물음에는
보고를 요구하는 기색도,
심문하는 냄새도 없었다.
다만
묻고 있을 뿐이었다.

윤검은
잠시 하늘을 보았다.

“사람이 먼저 사라집니다.”

정도전은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전쟁은
대개 그렇다.”

윤검은
그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기록에는
그 순서가 남지 않습니다.”

정도전의 눈이
잠시
윤검에게 머물렀다.

“그래서
네가 남았느냐.”

질문이었다.
책망도,
칭찬도 아닌.

윤검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아직
칼의 감각이 남아 있었다.

“남으려 한 적은 없습니다.
다만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돌아가면,
내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을 뿐입니다.”

정도전은
한 걸음 다가왔다.
그러나
더 묻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윤검의 등 뒤로 향했다.

연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작은 주머니가 쥐어져 있었다.
천은 낡았고,
매듭은 단단했다.

정도전은
그것을 보았다.

아주 잠깐,
그러나 분명히.

공기가
조용해졌다.

“아직은,”
정도전이 말했다.
“열리지 않는 편이 좋겠다.

열리는 순간,
그건 물건이 아니라
이야기가 된다.”

연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다만
주머니를 놓지 않았다.

정도전은
윤검을 다시 보았다.

“칼은
이제 전장에서 쓰는 물건이 아니다.”

윤검은
그 말을
곧바로 받지 않았다.

“그럼,
어디에 두어야 합니까.”

정도전은
잠시 말을 고르다가
짧게 말했다.

“사람들이
이름을 부르기 시작하는 곳이다.”

정도전은
말에 올랐다.

“도성으로 가는 길은
열려 있다.
그러나
검을 들고 들어가는 길은 아니다.”

말발굽 소리가
멀어졌다.

윤검은
그 자리에 남았다.

하늘은
여전히 낮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칼은
여전히
그의 손에 있었다.

윤검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연이
그 옆에 섰다.

둘은
목적지를 말하지 않았다.

다만
하늘이 멈춘 자리에서,
어디로든
걸어가고 있었다.

그들이 향하는 곳이
도성인지,
전장인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 3부 침묵의 서는 별도의 연재로 진행됩니다.

다음 연재에서 다시 이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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