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서 9장
간계는
소리 없이
닫혔다.
산길에서 벌어진 일은
기록되지 않았고,
이름도 남지 않았다.
누가 칼을 들었는지,
누가 살아남았는지는
입에서 입으로만
흘렀다.
태조의
그림자 무사가
그날 밤
자취를 감췄다는 말만
남았다.
죽었다는 말도 있었고,
어딘가로 물러났다는 말도 있었다.
어느 쪽이든
확인하려는 이는
없었다.
확인하는 순간,
다른 이름들이
함께 떠오를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끝나는 일은
이 시대에
낯설지 않았다.
윤검과 연은
머무르지 않았다.
마을은
조용했지만,
그 조용함은
이미 오래 버틸 수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길은
정하지 않았다.
사람이 적은 곳,
소문이 늦게 닿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윤검의 상처는
아직 깊었고,
연은
묻지 않았다.
말이 없다는 사실만으로
서로가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침묵이
언제까지 가능할지는
둘 다
알고 있었다.
윤검은
문득
걸음을 늦췄다.
자신이
어디까지 떠나왔는지
가늠해 보려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끝내
세지 않았다.
세는 순간,
자신이
누구를 두고 왔는지
분명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며칠 뒤,
말이
그들을 따라왔다.
“이방원이
다시 칼을 들었다더라.”
이번에는
형제였고,
피는
더 가까운 자리에서
흘렀다고 했다.
사람들은
그 일을
두 번째 난이라
불렀다고 했다.
누가 이기고,
누가 쓰러졌는지는
이미 끝난 이야기였지만,
그 이름들은
여전히 낮게
사람들의 입을 떠돌았다.
칼은
멈추지 않았다는 말과 함께.
윤검은
그 말을
다시 묻지 않았다.
이미
묻지 않아도 되는 쪽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사실이
자유인지,
패배인지는
확신하지 못했다.
이어
또 하나의 소식이
더해졌다.
태조가
왕위를 물러나고,
도성을 떠났다는 말이었다.
정사를 더는 논하지 않았고,
아들들의 이름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고 했다.
사람들은
조심스럽게
새 왕의 이름을 불렀다.
정종.
그 이름에는
환호도,
분노도 없었다.
다만
시대가
다음 장으로 넘어갔다는
체념만이
섞여 있었다.
윤검은
그 이름을
마음속에서조차
불러보지 않았다.
부르는 순간,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
너무 또렷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연은
걸음을 멈췄다.
“이제
돌아갈 곳은
정말 없네.”
윤검은
잠시
발밑을 보았다.
흙은
어디까지나 흙이었고,
길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채
이어지고 있었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왔잖아.”
그 말에는
위로도,
다짐도 없었다.
다만
지금 서 있는 자리만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 말이
연을 향한 것인지,
자신을 향한 것인지는
그 자신도
확신하지 못했다.
연은
더 묻지 않았다.
묻는 순간,
둘 중 누군가는
돌아가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둘은
다시 걸었다.
이름 없는 길,
기록에서
비켜난 방향으로.
왕조는
그 뒤로도
계속 움직였고,
칼은
새로운 이유를
찾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길 위에는
더 이상
그들의 이름이
놓이지 않았다.
그들은
역사에서
조용히
발을 떼고 있었다.
윤검은
그 사실을
늦게 깨달았다.
역사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이제부터
아무도 대신 말해주지 않는
시간 속으로
들어간다는 뜻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그는
처음으로
이 생각을 했다.
칼을 들고 남았다면,
덜 외로웠을지도 모른다.
그 생각은
곧 사라졌지만,
사라진 자리에는
이름이 남았다.
윤검은
그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부르는 순간,
다시
역사로 돌아가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는
말하지 않는 쪽을 택했다.
그리고
그 선택이
얼마나 오래
자신을 지켜줄 수 있을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